기만죄
[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어느 기독교 신학자가 죄의 원형을 3가지로 압축했다. 교만, 태만, 기만이다. 신학자의 이론이니 당연히 종교 색채가 가미되어 논리가 전개된다. 종교를 떠나서도 이 `3만’은 경계의 대상으로 꼽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요즘처럼 속임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랴.
지난여름 낙동강은 녹조가 번져 한바탕 난리를 겪다시피 했다. 물 컵에 담긴 강물이 마치 `녹조라떼’같아 보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정부가 이 녹조를 없애려고 10억원을 쏟아 부었다나 보다. 그러나 돈은 돈대로 쓰고 효과는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의 폭로를 통해서였다. 김 의원은 제거한 조류슬러지 포대 86개를 열어보니 63개는 모래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제거한 조류로 채운 포대는 23개뿐이었다는 소리다. 조류제거를 맡은 업체가 속임수를 썼고 이를 관리하는 환경관리공단이 대충 넘어간 모양이다. 강물에 가득 찬 게 조류였는데 이를 거둬들이기가 모래로 채우기보다 힘들었을까? 환경관리공단은 하는 일마다 어째서 이 모양인가?
법률에 규정된 죄가 몇 가지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 해도 국민을 속인 죄는 용서받기 어렵다는 정도는 안다. 모래를 조류라고 했다니 임금 앞에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는 옛 중국 권력가 조고(趙高)의 수법이다. 이 지록위마(指鹿爲馬)는 권력형 사기다. 그러면 모래를 조류슬러지라고 우긴 눈속임 행각은 도대체 어느 형태로 나누어질지 궁금해진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있고,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이지는 못한다.”
지금 정치권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증발, 이른바 `댓글’의 진상을 싸고 맞서 있다. 진실을 밝히려면 포청천 같은 판관이 나와야 한다. 국민 속인 죄를 누가 용서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