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인두겁’을 쓴 사람이라면

-매년 사망하는 3000명의 이산가족 고통

2014-02-23     한동윤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지난 주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남한에서 금강산으로 간 82가족이 북쪽 가족을 만났다. 무려 3년여 만이다. 1988년부터 작년 말까지 대한적십자사에 상봉 의사를 전달한 12만9264명 가운데 5만7784명이 이미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이상 상봉이 중단된 지난 3년여 동안 무려 1만여 명의 남쪽 이산가족이 북녘의 가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2000년부터 이뤄진 18차례 상봉에서 가족을 만난 사람은 2만1734명에 불과하다. 2013년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81세)에 비춰볼 때, 이산가족 대부분은 20년 내 거의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다. 2032년에는 현재 희망자 가운데 58%가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사망한다는 계산이다. 이산가족들이 단 한번이라도 가족을 만나려면 연간 상봉인원이 최소 6600명까지 늘어나야 한다. 더구나 이번 상봉에서 90세를 넘긴 우리 측 가족은 25명인 데 반해 북한 가족 중에는 90세 이상이 단 한명도 없었다. 남쪽 가족이 아무리 오래 살아야 북한 가족들이 일찍 죽기 때문에 이상상봉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요구해온 이산가족 면회소 상시 운영은 물론, 고령자에 대한 대규모 상봉 등을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사확인, 서신교환, 화상상봉 등 비대면 상봉도 필수적이다. 북한 가족의 생사 확인조차 외면하는 북한은 정녕 인간의 탈만 썼을 뿐 인간의 본모습이 아니다.
 20일 아침 우리측 상봉단을 태우고 금강산으로 올라간 19대 차량 행렬에는 3대의 구급차가 포함됐다. 구급차 2대에는 `죽더라도 금강산에 가겠다’는 김섬겸(91) 할아버지와 거동이 불편한 홍신자(83) 할머니가 각각 누워 탑승했고, 나머지 1대는 예비차량으로 따라갔다. 구급차 행렬이 보여주듯 이산가족 1세대의 초고령화는 이산상봉 확대와 정례화가 왜 시급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연간 상봉 규모를 당장 6000명 수준으로 늘리지 않으면, 향후 20년간 매년 30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생을 마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8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대한적십자사에 상봉 의사를 전달한 12만9264명 가운데 5만7784명이 이미 사망했다. 2000년부터 이뤄진 18차례 상봉에서 가족을 만난 사람이 2만1734명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사망자 가운데 최소 3만명은 다른 이산가족의 재회를 부럽고 아쉬운 눈으로 바라만 보다 숨진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도 2박3일간 실제 혈육이 만나는 시간은 식사 시간을 포함해 11시간에 불과하다. 잠도 따로 자야 한다. 더구나 북한 가족들은 북한 당국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감시의 눈이 다가오면 북한 김정은 찬양에 몰두한다. 가족 상봉이 아니라 꼭두각시들의 연기(演技)에 불과하다. 북측은 이번 상봉에 납북자 5명을 포함시켰다. 2010년에는 남한에서 전사자로 처리된 `국군포로’ 4명을 돌연 상봉자로 내보낸 데 이어 두 번째다. 북측이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상봉장에 내보내는 이유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이 의거 귀순했다는 억지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한반도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며 “전쟁은 시간문제”라고 발광한 건 불과 1년 전이다. 개성공단 문을 걸어 잠근 것도 북한이다. 그랬던 북한이 자기 손으로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이번에는 이산가족 상봉에 동의했다. 한마디로 “달러가 떨어졌다”는 증거다. 또 파종기를 앞두고 쌀과 비료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미군사훈련기간 중의 이산가족 상봉에 동의했겠는가?
 북한에 쌀과 비료를 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100명도 안 되는 이산가족 상봉으로는 안 된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그 전에는 쌀 한 톨, 비료 한 부대라도 북한에 줘선 절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