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샤워
[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군대 생활을 하며 점호는 선·후임을 가릴 것 없이 긴장된 순간이다. 이 시간이 다가오면 부대 안은 부산해진다. “대강 철저히 하라”는 선임병들의 다그침에 후임병들의 손길은 더욱 허둥대게 마련이다. “대강 철저(大綱 徹底)히 하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말은 총기 손질·관물대 정리 솜씨가 엉성한 후임병에겐 딱 들어맞는다. 대강대강 하더라도 짚을 곳은 꼭 짚어내 지적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때문이다.
이 모순덩어리 말이 통하는 구석이 영문(營門) 밖 사회에도 있는 것 같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그 한 곳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농약기준치를 초과한 바나나 2469톤 가운데 1089톤을 회수하지 못한채 유통시켰다고 한다. 9월 30일부터 10월 20일까지 수입된 바나나다. 바나나의 농약잔류허용기준이 9월 11일 강화됐는데도 정밀검사를 실시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감사원이 밝혔다. 식약처가 뒤늦게 손을 쓴 시기는 10월 16일. 이미 절반에 가까운 수입 물량이 팔려나간 뒤였다. ‘대강’이라도 ‘철저히’ 검사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업무 태만이었다.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바나나의 추억을 안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본 광경이다. 열대지방에서 설익은 바나나가 배편으로 운송되면서 거치는 과정이었다. 농약이 수돗물처럼 흐르는 설비를 거치면서 바나나가 농약으로 샤워를 하듯 하던 장면은 좀처럼 잊혀지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배가 출출해지면 집어드는 게 바나나다. 간단히 요기를 하기엔 안성맞춤인 까닭이다. 그 순간만은 농약으로 샤워한 바나나라는 사실을 잊는다. 참으로 편리한 망각이다.
그란빌의 ‘독선의 허영’에 이런 말이 써있다. “약장수는 시인, 산책자, 농부와는 다른 눈으로 약초를 본다.” 식약청 관계자들의 바나나 보는 눈이 이랬더라면 우리 소비자들이 농약으로 샤워한 바나나를 먹지 않아도 됐을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