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오페라의 거장 바그너… 기획 공연 시대 열다
김일영의 클래식 이야기
[경북도민일보] 우리가 흔히 오페라라 하면 이탈리아 출신의 주세페 베르디를 떠올린다.
그러나 베르디만큼 근대 오페라에 영향을 준 독일의 작곡가가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인데 그의 특이한 인생과 사후 그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히틀러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바그너의 음악은 우리 인생에 꼭 한번은 들어야 하는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관례처럼 꼭 연주되어야 하는 곡,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불륜과 사랑의 혼돈 속에 탄생한 바그너 음악
앞서 지난 2회동안의 기고문에서는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이야기와 스승의 부인을 사랑했던 제자 브람스의 숭고하고 낭만적인 플라토닉 사랑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바그너의 사랑은 전혀 달랐다. 바그너는 감정의 표현이 직설적이고 솔직해서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숨기지 않는 그의 감정표현이 그에게는 평생 많은 여자들과 염문이 끊이질 않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절제하지 못한 그의 감정은 수많은 여자들과의 스캔들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바그너의 첫 번째 부인은 자신의 오페라 여배우 ‘미나’였는데,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 내다가 결혼을 하게 됐지만 결혼 후에도 가정에는 충실하지 못했다.
유부남이 되어서도 바그너는 그의 최대후원자 ‘미젠퉁크’의 부인과 정분이나 한때 세간의 가십거리가 됐다.
후원자로부터 강압적으로 연인과 이별하게 된 바그너는 큰 실연의 상처를 받는다.
그는 이별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죽음으로 표현한 4시간이 넘는 거대 작품으로 이를 작곡하면서 스스로 실연의 아픔을 이겨냈다.
이후로도 바그너의 사랑은 독특했는데 바로 자신의 제자인 ‘한스 폰 뷜로’의 부인 ‘코지마’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공교롭게도 코지마는 당대 전 유럽에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리스트’의 딸이었다.
‘한스’는 자신의 아내를 빼앗긴 마당에 스승인 바그너와 원수가 됐고 바그너가 죽을 때까지 바그너의 사생활을 폭로하며 사람들에게 비난하는데 앞장선 사람이 됐다.
바그너가 사랑은 평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슈만과 브람스처럼 낭만적인 스토리도 없다.
그저 사랑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에게 오는 비난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특이한 인생처럼 그의 음악도 그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을 만들며 근대의 오페라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다른 예술을 융합하여 기획 공연의 시대를 연 바그너
바그너의 음악은 음악, 문학, 신화, 연극, 무용, 무대설치미술 등이 함께 융합되고 어우러진 대규모 공연으로서 종합예술로 인정받았다.
바그너 이전의 오페라는 개인의 감정, 사랑, 미움, 배반, 복수, 죽음 등의 내용이었지만 바그너의 오페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내용으로 신화나 전설, 종교적 내용으로 대규모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공연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거대하고 장엄한데 보통 공연시간이 4시간을 넘어 5시간이 넘는 작품이 많았다.
‘로엔그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이 있는데 특히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오페라는 26년간의 긴 세월로 만들어낸 그의 역작이다.
이 작품은 나흘간의 공연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대작이다.
이런 식의 공연은 역사상 유래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바그너 후기 작품은 규모가 너무 커서 웬만한 전용극장에서 공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요즘도 좀처럼 바그너의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드물다.
△히틀러가 사랑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바그너 작품 중에 그의 사후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라는 오페라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일명 ‘백조의 성’이라고 불리는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상상하게 하지만 반면에 전 세계에서 가장 암울했던 역사의 현장에 이용당했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이 작품은 1942년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서 나치의 단합을 위해 공연됐고 1943년 바이로이트 음악페스티벌에 참가한 히틀러를 위한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됐다.
히틀러가 이 오페라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유는 오페라의 내용이 그들의 상황과 잘 맞다고 여겨졌고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도 대규모의 관현악을 동반해서 관현악과 성악이 대중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엄한 바그너 음악의 특징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했다는 것이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내용은 독일 남부의 뉘른베르크에서 신인가수들의 노래경연의 이야기이다.
우승자는 금세공사의 딸인 아름다운 여인 ‘에바’라는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다.
‘에바’에게는 사랑하는 기사 ‘발터’가 있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한스’라는 구둣방 주인이 있다.
그리고 ‘에바’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려는 악역 ‘베크메사’라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그녀를 갖기 위해 일단 가수 조합에 가입해 신인노래경연장에서 꼭 우승을 해야만 한다.
주인공 발터는 뛰어난 노래실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규칙 때문에 가수 조합원 가입을 할 수 없게돼 노래경연대회에 참가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낙심한 주인공 ‘발터’와 ‘에바’는 야반도주를 계획하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발터’의 노래실력에 감동한 ‘한스’라는 구둣방주인이 몰래 손을 써서 가수 조합에 가입하게 되고 발터가 신인노래경연대회에 우승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줄거리로 보면 동화 같은 단순한 사랑이야기이지만 격동기의 유럽 즉 히틀러가 독일을 집권하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 인류가 고통의 나날을 보낼 때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바그너의 작품을 나치의 방식으로 희화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위해 바그너음악을 이용했다.
히틀러의 나치는 ‘베크메사’라는 악역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유대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왜곡했다.
‘베크메사’와 ‘명가수 조합’이 부도덕한 일을 일삼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혁명으로 새로운 독일을 내세우자라는 사상을 바그너의 음악을 편승해 앞장서게 했다.
이렇게 바그너 오페라의 내용은 후대 정치가의 목적에 따라 또는 사람의 사상에 따라 얼마나 내용이 달라질 수 있게 하는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 됐다.
히틀러가 이 오페라를 얼마나 좋아 했는지 어릴 적부터 휘파람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뉘른베르크 명가수의 오페라가 히틀러에게는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나치의 본거지도 뉘른베르크로 정하는 원인이 됐고 나치 전당대회에서도 독일민족주의를 위해 이 곡이 연주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그너가 미리 독일의 미래를 위해 후세에 배타적인 민족우월주의를 그의 음악으로 전해 준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이 오페라를 감상하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바그너의 뉘른베르크 명가수 전주곡만 듣더라도 장엄함을 넘어 마치 거대한 감동의 물결이 분명히 느껴질 것이다.
한편의 대 서사시의 이야기를 상상한다면 대 서사시가 되고 민족영웅의 일대기를 상상하며 감상하면 민족의 영웅이 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히틀러는 자국의 국민의 감성에 민족주의를 바그너의 음악을 앞세워서 세뇌시켰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그너 음악의 뿌리는 생명력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에 심취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그너 음악에는 음악이 주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이란 시들어 죽어가는 풀잎사귀에 단비가 내려 푸르름의 생명력을 다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음악이 주는 생명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곳이 바로 전쟁터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의 군대는 군가(軍歌)를 중심으로 군인들의 사기를 드높인다. 군가는 패전 직전의 군대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놀라운 기적을 발휘한다.
군가는 군인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는 접착제와 같다.
군가는 반드시 이기게 만드는 의지력을 높여준다.
바그너의 음악을 히틀러는 독일국민 전체를 하나의 군대로 뭉치게 하는 군가로 사용했다.
히틀러의 목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만큼 바그너 음악이 주는 생명력은 증명이 되는 샘이다.
공부에 지친 수험생들이나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큰 꿈을 꾸게 하려면 바그너의 음악을 듣게 하라.
온 종일 가정을 위해 고생하는 대한민국 아빠들에게 선물하라.
바그너의 음악은 한마디로 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보양제 같은 음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