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한 단상(斷想)
2022-09-26 경북도민일보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은 기다리지 못한다. 과학의 발달로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일까. 매사에 성급하고 조급하다. 무슨 일이든지 너무 쉽게 예단하고 결론부터 지으려 한다.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바라고, 조금씩 축적하기보다 대박이라는 한방을 좇는다. 어떤 상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만, 그 조금을 참고 기다리지 못해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일을 망친다. 수십 년에 걸친 나쁜 습관으로 병이 생겼지만, 그것을 안 순간 당장에 고치려 한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포기도 빨라 금세 좌절한다. 그래서 병으로 죽기 전에 제풀에 지쳐 죽는다. 주식투자에서 가장 손실을 많이 보는 유형은 조급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기다리지 못해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허다한가. 그리고는 끝내 후회하며 가슴을 친다. 조급함은 현대인들의 고질병이다. 조급함이 실수를 낳고,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서두른다. 그래서 늘 쫓기듯 살아간다.
성급하고 조급하다는 것은 결국 기다릴 줄 모른다는 의미이다. 결과에만 집착하면서 정상적인 과정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이란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 바라는 것이 언젠가 실현될 것이라는 막연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수동적, 피동적으로 안주하는 시간은 더욱 아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인고의 시간이자,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성취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물리적 개념인 시간은 세월이 흘러야 어느 시기에 도달하지만, 그 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날이 오기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 아픔과 고통을 견디며 인내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갈망하던 그 시기는 자꾸 뒤로 물러난다. 그러므로 성취는 단순히 기다리는 능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한순간에 이룰 수는 없다. 과정이 있는 법이고, 그 과정을 묵묵히 견뎌낸 사람만이 값진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화롯불을 갖다 대도 꽃은 빨리 피지 않고, 뜨거운 물에 술병을 담가놓아도 하루아침에 좋은 포도주가 되지 않는다. 잘 숙성되려면 세월을 담아야 한다. 이처럼 사람도 기다림을 통해 성숙되고 다듬어진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나태하고 나약했는지, 얼마나 실수투성이였는지 돌아보며 다시 잘해보겠다는 결심도 하게 된다. 무언가를 완성하거나 탁월해지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듯, 기다림 속에서 영혼은 무르익고 인격은 향상된다.
저명한 저술가이자 ‘만인의 성직자’로 불리는 ‘긍정적인 사고’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아는 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모든 것이 주어진다”라고 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라는 말은 기다리는 동안 일을 잘 처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온다는 뜻이다. 우리가 바라고 갈망하는 모든 것들은 기다림 너머에 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움을 견디며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을 넘지 않으면 바라는 그것에게 갈 수 없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