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들 비극적인 죽음 일본 유해 고국으로 모셔와야”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최천종·김한중 두 통신사 죽음과 비극적 역사 알려

2024-04-23     김희동기자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이 최근 일본을 다녀와 조선 통신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알렸다.

23일 김 소장은 임진왜란 때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역관(譯官) 최천종(崔天宗)과 부관 김한중(金漢重)의 유해를 고국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국왕이 일본의 에도에 파견한 교린 사절로 한국과 일본 문화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조선통신사가 조작된 문서와 도장에 의해 초빙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대마도 번주 소요시토시에게 조선과의 동맹을 요청했다. 대마도 번주는 조선과의 동맹을 위해 문서와 도장을 위조하려고 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전쟁이 종결된 후, 일본은 조선과 화친을 맺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초빙하도록 대마도 번주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대마도 번주는 이미 조선에서 쇄신사로 처리된 것으로 보고했지만 양국 간의 교류를 위해 위조된 조선 임금 도장과 문서를 일본에 보냈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게 됐고 교류가 시작됐다.

그러나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은 평화 교류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일본의 아라이 하쿠세끼는 조선통신사를 반대하고 추방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통신사의 통역단장인 최천종은 일본인에게 살해당했으며 최천종의 죽음은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일본의 교토에는 그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이후에도 조선 합방 성토대회가 귀 무덤에서 열렸고, 최천종과 함께 묻혀있는 김한중의 묘는 일본 오사카시 서구 혼마치에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김한중이 병사가 아니라 일본 우익단체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문길 소장은 “최천종 살인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이는 외국인을 보기 힘들었던 일본에서 200년 동안 연극이나 소설의 이야깃거리로 전해졌다”며 “그들이 모셔져 있는 조동정 절의 주지 호사카 마사아끼는 이들이 고향(한국)에 돌아가도록 주선해야 한다고 추모의 인사말을 전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