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시대의 일화 ②

2024-10-07     경북도민일보
△경부고속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변북로 완공(1967년) 3년 전인 서독 방문 때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구상한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은 그렇게 빈틈없이 기획되고 조직되어 구체화 됐다. 그리고 다음 해 1968년 2월 경부고속도로는 첫 삽을 떴고, 그로부터 2년 5개월 뒤인 1970년 7월 7일 역사적인 한국의 동맥이 개통됐다. 탁월한 지도자는 나라가 자유롭게 번영할 수 있게 본바탕이 되는 줄기와 뼈대를 멀리 보며 설계하고 치밀하게 시공한다. 그 원천은 정확한 판단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신념과 넘쳐흐르는 추진력에서 이루어진다. 모두가 통치철학의 산물이다.

경부고속도로의 구상은 독일 ‘아우토반’에서 안을 세우고 모형은 ‘강변북로’로 삼았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그리며 바라던 염원이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이뤘으니 이런 대역사(大役事)의 경험을 축적시켜 비약의 토대를 마련하고 무한 발전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박정희와 고속도로·길에서 길을 찾다』 〔금수재 (본명·김정태) 기파랑, 2021〕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1970년 완공)를 구상한 것은 1961년 5·16 군사혁명 직후였으며, 고속도로 착공의 전(前)단계로 제주도에서 근대적 도로인 5·16 도로를 개통한 것이라고 한다. 1963년 10월 11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제주 5·16 도로 1단계 구간 개통식의 치사에서 “서독은 아우토반을 건설해서 일찍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제주도는 횡단도로 개통을 계기로 ‘한라산의 기적’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1964년 서독을 방문하기 1년 전에 나온 것이다.

이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많은 사연들이 깃들여있다. 그 중에는 430km의 전 공사 구역을 나누어 맡아 하는데, 여기에는 공병들도 참여했는데, 야간작업 때는 횃불을 들고 독려하고, 한쪽 손에는 나무 자로 아스팔트의 두께를 재며 부족분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도로에 드러누워 공사의 진행을 막았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탄대로가 났는데 왜 우마차도 못가고 개도 못가냐고 불만이 대단했다. 그게 국토의 대동맥을 뚫어 산업의 물적 유통 혁명을 이루어 경제를 성장한다는 속 깊은 그 뜻을 일반인들은 알지를 못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의 일화로 박정희 대통령이 수시로 공사 현장을 찾던 중 수원 근처의 국밥집에서 저녁밥을 먹다가, 주인 할머니가 “당신은 꼭 우리 대통령을 닮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내가 그 사람을 닮은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닮은 거겠죠”라고 댓구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순신장군 동상

광화문 사거리에 이순신장군 동상이 건립된 것도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김세중(서울대 교수) 조각가에 의뢰했다. 그 때 1000만원이 들었는데 비용은 전액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맡았다.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2009년 오세훈 시장 때 완공됐다. 광화문 ― 청계광장을 잇는 세종대로 중앙에 2만㎡ 공간을 내느라 왕복 16차선 도로가 12차선으로 줄었다. 도로 중앙에 있던 수령 50~100년 아름드리 은행나무 수십 그루를 베어낸 자리에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앞면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인물 동상을 세워라”는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68년 이순신 동상도 광장 중심에 자리 잡아 서 있다.

△유진상가

이 밖에도 낙원상가(1968년)와 유진상가가 있는데 유진상가는 서대문구 홍제천을 복개하여 그 위에 주상복합아파트로 폭50m, 길이 200m이며 1969년에 착공하여 1970년에 완공하였다. 건물 변에 거대한 기둥과 넓은 공간은 안보상 서울의 서북지역이 뚫렸을 때 아군 전차의 진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방어와 공격이 가능한 전술적인 지점이며 이곳은 은폐·엄호물로 사용하다가 유사시 폭발시키면 그대로 폭삭 내려 앉아 홍제천을 가로막는 ‘바리케이드’ 역할까지 고려한 군사대비 건물이며, 유난히 콘크리트를 많이 쓴 건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포항제철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주역인 포항종합제철회사가 기업가 정신으로 ‘제철보국’의 기치를 들고 1968년 4월 모래바람 부는 포항의 바닷가 황량한 벌판에서 탄생되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을 활용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짓게 되었다. 이때 박정희대통령은 박태준을 불러 놓고 “임자 모든 역사는 철에서 시작되며 〈쇄는 산업의 쌀〉인데 맡아서 바닥을 일궈봐라”. (박정희) “〈제철 보국〉으로 진력을 다해 도전해 보겠습니다”. (박태준)

1991년 모스코바대학총장 아나톨리 로구노프가 한국에 와서 포항종합제철회사 회장 박태준을 만나 포항제철에 따른 연혁을 듣고, 유치원부터 초등, 중·고등학교 및 대학의 시설구조와 회사직원들의 아파트 등을 둘러 본 총장은 박태준 회장에게 ‘레닌 동지의 이상향을 여기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즉 공산당이 꿈꾸던 지상낙원을 포항에서 처음 봤다는 것이다. 그는 솔직한 감명의 일단을 여과 없이 피력한 것이지만 그 음미의 함축을 되새겨 봄직하다. <끝>

이준걸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