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풀밭

2024-10-22     경북도민일보

- 변영현





눈을 뜨면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뿐인데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고 박쥐는 새가 아니고

아니지만 이름을 벗을 수 없고 바다를 떠날 수 없고 날개를 버릴 수 없다



온몸이 피로로 꽉 차면 딸깍

스위치를 내리듯 눈을 감는다



누가 내 잠에 죽음을 탄 걸까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깊이 가라앉는다



잠은 낱개 포장된 죽음

낱개의 죽음을 다 써 버리면

죽음의 원액을 마셔야 할까



버둥버둥 버둥거린다 언제 내 다리에 비늘이 돋았나 마른 바닥 물고기가 되어 물 좀 주세요 물 좀 주세요 물 한 컵이면 붕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데



되돌아간다 돌아가서

다시 낯선 이름으로 꿈을 꾸고



어쩌면 나는 잠이 피워낸 풀 한 포기

내 뿌리는 언제나 잠을 움켜쥐고 있다

 

 

 

 

 

 

 

2021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