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

2024-10-23     경북도민일보

- 박민서





빛이 문을 열고 그림자는 뒤따라가요

이곳에는 빗자루와 수건의 법칙이 있어요

서로가 안부를 빗자루로 쓸어 담고 기다림을 수건으로 동여매기도 해요

머리카락은 해체되어 사람들의 수다에 이리저리 파닥거릴 뿐이죠

일상의 그림들이 낯선 풍경의 빛을 다 지우고 흑백으로 다가와요

시끄러움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사람도 있어요

누군가는 헤어드라이기로 이미 타버린 가슴을 말리고 있어요

기계는 기록하고 생각은 조금씩 사라져 가요

숫자로 이름을 대신해요 키오스크 앞에서의 손가락 움직임처럼

웃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항상 젖어 있어요

기계도 감동을 하면 눈이 부시게 웃어요

기억해 둔 숫자를 잊을 때가 많아요 숫자가 그림자라면 빙하가 녹을 때내일을 버틸 수 있을까요

셀프 주유나 미용실의 수다는 날마다 업그레이드되어요

슬픔을 주문하는 기계를 갖고 싶어요, 슬픔은 사라지지 않은 수다이니까요


 

 

 


 

2019년 『시산맥』 등단

시집 『야간개장 동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