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우 시인, 전통·현대 아우르는 시조의 새로운 면모 담다
‘먹물을 받아내는 화선지처럼’ 총 70편 작품 담은 시집 펴내
경주 출신의 이화우<사진> 시조인이 최근 ‘먹물을 받아내는 화선지처럼’ 시집을 펴 냈다.
이 시인은 그간 시조를 통해 고전적 미감을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고수하면서도, 그 안에 시대적 감각과 개인적인 체험을 녹여내는 데 능하다.
이화우 시인의 최근 시조집 ‘먹물을 받아내는 화선지처럼’은 그런 그의 시적 여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이번 시집에서는 고전적 미감과 전통에 대한 애착이 물씬 느껴지는 동시에, 새로운 감각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는 그의 시적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조집은 5부로 나눠 70편의 작품을 담고 있으며, 고향 경주의 금령총, 가을밤, 고향집에 비 내리고, 감은사지 등을 비롯해 남해 금산, 낙산공원, 검룡소, 피맛골 등에서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흔적이 엿보인다.
이 시조인은 “많은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꽃이 지고 난 나무나 풀들의 말, 시간의 형체 등에 대한 미처 알지 못한 것들을 언급하며 “내 눈물의 의미를 조금은 안다. 만지고 보아야만 믿을 수 있는 세상을 산다”며 시집 첫머리에 인사말을 전했다.
정수자 시조인은 ‘고전적인 깊이와 발효의 문양’이라고 시조집 해설에서 이화우 시조인에 대해 “고전적 미감이란 일종의 운명일지 모른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화우 시인의 고전적 취향은 단지 그가 그 길을 따라가야만 했던 운명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자연스럽게 기울어간 남다른 취향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화우 시인은 고전적인 미학을 지키면서도 그것에 묶이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고전적인 시조를 사랑하고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한편, 시조를 짓는 것이 단순히 전통을 따르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시에서 종종 드러낸다. 이번 시집에서도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인 감각이 절묘하게 결합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시적 색깔을 선보이고 있다.
이화우 시인은 최근 전통주 빚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집에서는 이러한 취미가 시적 영감으로 스며들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가을비를 “밀주처럼, 누룩취가 스며드는 가을비”로 비유하며, 전통적인 술의 향취와 그 속에 깃든 은밀한 미감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비유는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그 자체로 시적 상징성을 지닌다.
가을비를 “밀주”로 비유한 부분에서는 술의 은밀한 취기, 그리고 누룩의 향기가 글자 그대로 전해져 오는 느낌을 준다. 이화우 시인은 술 내리는 소리를 “춤추듯 청향 위에서 떨어지는 기억”으로 표현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발효된 경험과 감정을 빚어낸다. 이 과정은 마치 전통주가 발효되는 것처럼, 시인의 감정과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어지고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화우 시조인의 이번 시집은 고전적 미감과 현대적 감각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고전적인 시조의 격조를 따르면서도, 전통주 빚기와 같은 개인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온 새로운 상상력이 시의 깊이를 더한다. 그가 시조를 통해 펼치는 감정의 깊이는 마치 오래된 술이 발효되듯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풍부하고 깊어져 간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이화우 시인이 그려낸 시조의 세계를 한 걸음 한 걸음 거닐며, 그 속에 담긴 향기와 정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시조인은 200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조집으로 ‘하닥’과 ‘동해남부선’이 있다. 또한 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