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승계, `금지된 허용’인가-
조동근 (명지대 교수,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육상 계주 경기에서 바턴 터치 실패는 레이스 탈락을 의미한다. 기업도 최고경영자의 경영권 승계가 매끄러워야 경쟁력 있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근대기업 역사가 짧은 우리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충분히 정착되지 않아 경영권 승계는 `대물림’이 많다. 재벌 경영권 승계는 재벌체제의 아킬레스건이며, 늘 편법승계 시비가 따랐다.
흔히 `가업을 잇는다’는 말을 한다. 선대(先代) 유업을 물려받는 말이다. 그러나 가업을 잇는다고 후대(後代)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 여부는 시장이 판단한다. 그렇다면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가업을 잇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면 `작은 것’의 대물림과 `큰 것’의 대물림 차이일 것이다. 크기 차이는 본질이아님에도, 큰 것의 대물림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 책임, 공공성, 윤리 등이 강조된다. 우리 사회는큰 것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위 이중 잣대다.
(反)기업 정서의 실체는 `반(反)기업인’ 정서다. 삼성과 현대그룹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들 그룹 총수는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국민이 뒷바라지한 결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민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기업은 국민이 주인인 기업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주주의 `사유재산`일 뿐이다. 기업과 그 주인을 분리하려는 사회심리가 현실과 부딪치면서, 큰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형성된 것이다. 경영권 승계도 그 대상 중 하나다.
현행 상속세법 구조 하에서 정상적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편법 승계 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를 보자.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정몽구 회장이 행사하는 지배권을 그대로 승계받기 위해 정 회장 그룹 지분 전부를 증여(상속)받는다고 가정하면, 정 사장은 2005년말 기준으로 1조 3000억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정 회장의 현대차 그룹 지분의 주식평가액이 2조 6000억원이고, 30억 이상을 상속할 때 증여ㆍ상속세율이 50%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납부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의선 사장이 현대차, 모비스, 기아차로 연결되는 상장 주력 계열사만을 지배한다 해도 상속세는 8000억원에 이른다. 정사장은 8000억원을 납세용 재산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시가총액과 주주 지분분포 등을 감안하면 상속세법 구조 하에서 경영권 승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같은 사정은 4대 재벌의 공통 사항이기도 하다.
최고 상속ㆍ증여세율 50%는 가혹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자식세대가 물려받은 재산은 이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분 상속의 경우는 다르다.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데,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해 세금을 내면 경영권을 행사할 만큼 지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세대만 소유경영을 하고 자식세대는 경영에서 손 떼거나 전문경영을 하라는 것이다.
편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또 다른 단골메뉴는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부의 축적이다.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비상장회사를 설립한 뒤 계열사들이 신설회사를 전폭 지원해, 주력 계열사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실탄’을 편법으로 마련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글로비스’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글로비스 같이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계열사를 공개 모집하지 않고 사모(私募)해 상장하지 않음으로써 유망한 사업기회를 지배주주가 편취했다는 것이다.
편법상속 시도는 높은 상속세율 등으로 정상적 경영승계의 길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을 풀 방법은 없다. 지분 상속의 경우 상속재산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세율을 낮춰 편법상속의 유인을 줄여야, 정상적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상속세율인하가 어려우면 `차등의결권’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은 차등주식을 통해 4.46%의 지분으로 2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따라서 편법을 척결할 수는 없다. 대신 편법의 유인을 줄여 편법의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마녀사냥이 잦은 사회가 청렴한 사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사회심리는 `큰 것’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별 기업의 가족경영이 무한히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성과를 유지할 수 있다면 가족기업을 굳이 백안시 할 필요는 없다. 경제적 비중이 큰 재벌의 사회적 책임도 막중하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된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의 기업에 대한 배려와 짝을 이뤄야 한다. (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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