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보러 집나간 理性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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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보러 집나간 理性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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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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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환/언론인  
 
 5월 31일 지방선거는 집권 열린우리당에게 궤멸적 참패를 안겼다. 선거민심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야당, 일부언론이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 4일 한국-가나 축구 평가전이 치러졌다. 이날 밤 KBS, MBC, SBS는 일제히 생중계했다.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국정에 반영해야 하는지, 국정책임자의 귀책사유는 얼마나 되는지, 부동산, 세금정책 등을 어떻게 손대야 하는지 중요한 문제들이 축구에 묻히고 말았다. 온 나라가 월드컵 광풍에 휩싸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 틈에 선거민심에 대해 이렇게도 저렇게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면서 부동산 등 기존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나왔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민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당의장과 최고위원이 모두 유고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선장없이 표류하는 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월드컵 열기는 갈수록 뜨겁다. 마치 월드컵을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 월드컵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는 식으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남녀노소가 놀랍다. 월드컵이 막을 올렸으니 그 광기는 하늘을 찌를듯 하다.
 그 책임은 공중파 TV들에게 돌아간다. 지방선거가 의미하는 국가적 진로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누가 단 1분이라도 월드컵 특집을 더 많이 꾸미느냐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 마치 2002년 4강 진출의 짜릿한 추억이 재생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스위스와 프랑스를 물리치고 16강, 8강, 4강에 오를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아프리카의 축구강국 토고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가나에게 3대 1 완패 당했는데도 광풍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월드컵 열기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선수들이 선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국익에도 부합된다. 더구나 지방선거 결과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불관언하는 집권세력들의 모습이 축구 열기에 가려져 국민들 스트레스를 푸는데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경제전문가들은 2002년 4강 신화가 1%의 GDP 성장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승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광기도 이성을 잃을 정도면 곤란하다. 오죽하면 일부 시민단체들이 `반(反 )월드컵 스티커’를 서울 시내에 붙이고 나섰을까.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는 “월드컵 보러 집나간 정치적 이성을 찾습니다” “나의 열정을 이용하려는 너의 월드컵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도처에 붙였다. 월드컵 열풍과 상업주의가 결합돼 한미자유무역협정 등 핵심적 문제가 주변으로 밀려나는 데 따른 반발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2002년 월드컵 때 30대 가정주부가 붉은악마의 시청앞 응원에 호응해 열광하는 사이 집에 혼자 남겨진 갓난아기가 질식해 숨지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가정주부라고 응원에 가세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동양적 사고로는 `엽기 주부’다. 어린 아기의 생명도 지켜주지 못하면서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축구는 인기스포츠가 아니었다. 고정 팬은 야구나 농구가 더 많았고 이른바 경기장의 `오빠부대’도 축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축구가 광기에 휩싸인 것은 정몽준 의원이 축구협회장을 맡고 정치적 색채를 가미하면서 국민스포츠로 발돋음했다. 세계 4강 신화를 이루자 정 의원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오직 축구의 힘에 의한 정치적 파워였다.
 축구의 광기는 남미가 대표적이다.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4번 우승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지금 부패와 가난과의 싸움으로 지샌다. 농민들은 좌파정부가 땅을 나눠주지 않는다고 의회를 점령하기도 했다. 브라질 못지않은 축구강국 아르헨티나도 다를 바 없다. 먹고 입는 걱정이 태산같은데 축구만 나오면 거의 미친듯 흥분한다. 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1969년 축구 분쟁으로 전쟁을 일으켜 100시간의 전쟁 끝에 2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월드컵도 적당히 즐기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축구를 정치에 이용하고 선거에 활용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도 지나친 흥분은 삼가야 한다. 축구 하나 잘해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면 평소 노력이 무슨 소용인가. 잘 훈련된 축구팀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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