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우리나라는 한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수퍼 수입차의 천국(天國)이다. 대당 가격이 2억원을 넘는 세계 최고급 차 ‘벤틀리’ 중에서도 수퍼카 ‘플라잉스퍼’(Flying Spur) 세단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곳이 대한민국 서울이다. ‘플라잉스퍼’ 최저 판매가는 아파트 한 채에 해당하는 2억6000만원 정도다. 이런 수퍼카가 지난해 322대나 팔렸다. 전년의 164대에 비해 96% 정도 급증한 것이다.
벤틀리 서울 강남 매장은 세계 57개국 매장 200여개 중 판매 실적 1위다. 뉴욕, 베이징, 파리 매장을 압도한다. 세계 최고 연봉을 받는 축구 스타 메시와 세계 최고 테너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구입한 것으로 유명한 마세라티의 지난해 국내 판매 증가율(전년 대비)은 468%. 전 세계 7위다. 이제 겨우 발 뻗고 살만해진 대한민국에 웬 외제 수퍼카들이 이처럼 넘쳐나는 것일까?
조선일보가 지난달 29일 그 이유를 밝혀냈다. “돈 잘 버는 개인 사업자들이 소득세율 인상에 세금 줄이기 위해 수입차 구매에 나선다”는 것이다. 세금 적게 내려고 귀한 달러를 외제차 구입에 펑펑 내지르고 있다는 폭로다.
그 극단적인 예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부실 대출로 은닉 재산을 추징당하고 있는 채모(68) 도민저축은행 회장이다. 그는 고가(高價) 수입차 26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직접 구입한 차는 한 대도 없고 대다수는 대출금을 못 갚은 중소기업 사장이나 자영업자들로부터 압류한 것이다. 예보 관계자는 “상당수 중소기업주가 회사 명의로 고가 수입차를 구입해 굴리고 있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대당 가격이 10억원이 넘는 초고가 차량 부가티 등도 포함돼 있다.
수퍼 고급차일수록 법인(法人) 소유 차량 비중이 높다. BMW·벤츠·아우디의 국내 판매대수에서 개인사업자나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1%, 63.6%, 53.4%로 절반이 넘는다. 2억~3억원대인 롤스로이스는 올 5월 말까지 팔린 28대 중 27대(96%)가 법인 소유다. 벤틀리는 87%, 랜드로버는 63%.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개인사업자나 법인의 업무용 차량에 대해 차 값은 물론 유지비까지 무한대 경비(經費) 처리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소득 1억5000만원 이상 개인사업자에 대한 소득세율이 35%에서 38%로 인상되면서 중소기업인은 물론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까지 세금을 줄이기 위해 대거 고가 수입차 구매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업무용차 구입 비용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둔다. 미국은 차량 값이 1만8500달러(약 2000만원)를 넘는 경우 세금 공제를 차등 적용한다. 일본은 차량 가격 300만엔(약2600만원)까지만 업무용 차량으로 비용 처리해준다. 캐나다는 3만캐나다달러(약 2700만원) 미만, 호주는 5만7466호주달러(약 5000만원) 이하에서만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조선일보는 조용석 국민대 교수(자동차공학)의 “법인 차량의 개인적인 사용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발언을 소개했다.
국세청은 월급쟁이들의 월급봉투에는 가차 없이 세금을 부과한다. 시장통 상점의 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잘나가는 자영업자, 의사, 변호사들이 개인 아닌 법인 명의로 수퍼카들을 사들이는 데에는 너그럽다. 우리나라가 수퍼카 천국이 된 데에는 세무당국의 책임이 크다.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