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試 하나로 팔자 고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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考試 하나로 팔자 고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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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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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의 광풍에 묻힌 나라-  
김진영/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대학은 자격시험 열풍이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3대 고시뿐 아니라 교사임용고시, 언론 고시 등 `고시’자 붙는 시험이 참으로 많다. 이러한 열풍은 각종 공무원 시험까지 연결되어 대학에서는 7급 공무원을 뽑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휴학을 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실학자 박제가의 대표작 북학의에 나오는 과거론 중 다음의 글월을 떠오르게 한다. “독서하는 자는 글자를 보면 운을 달 것을 생각하고, 글귀를 보면 시험 제목을 생각한다. 그말은 이용해도 그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것으로써 사람을 뽑으니 허술하기 짝이 없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시험에 붙기 위해 하는 공부를 통해 얻는 것은 시험 합격과 합격 후의 안정된 삶이지 사회 전반의 생산성 향상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합격하는 사람보다 합격 못하는 수가 수십배 되는 것이 현실이다. 불행히도 시험을 위한 시험공부가 갖는 폐해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과거와 고시의 폐해는 다수의 폐인(廢人)을 양산함과 동시에 젊은이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박제가 선생께서도 과거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신 바 있다. “수십년 동안 대과와 소과에 합격한 인원이 국가 관직 정원보다 10배나 된다. 10배나 되는 합격자를 모두 임용할 수 없으니 9할은 과거를 헛되게 실시한 것이 분명하다.”
 박제가 선생이 글을 쓴 조선 후기에는 과거 합격 인원이 관직 정원의 10배는 되었나 보다. 관직 정원만큼 뽑는 요즘 시험과 다르지만 시험공부에 많은 투자를 하고도 관직을 얻는 사람은 극소수에 이르는 현실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소위 낙방생들이 자신과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의 좌절과 실패로 말미암은 비용은 참으로 크다.
 과거와 고시의 또 다른 폐해는 창의적 활동을 해야 할 젊은이들의 시간을 과거나 고시시험준비라는 표준화된 행위로 빼앗는 것이다. 지식기반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오늘날 이런 폐해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비교우위’ 있는 부분에 특화하여 전문지식을 닦아야 할 귀중한 시기에 표준화된 시험공부만 하게 된다면, 그 공부가 생산적 활동과 관계 없는 것이라면 그 폐해는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만큼 엄청나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이 휴학 해가며 고시에 시간을 쏟는다는 것은 자원 낭비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고시를 치르는 이유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이다. 통과만 하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험 준비를 한 사람이 시험에 통과한 다음 보여줄 행동은 눈에 잡힌다. 이른바 복지부동이란 말이 관련 있다. 고시제도는 안락함을 쫓는 진취성을 결여한 젊은이들의 목표가 될 것이다.
 고시제도를 대신할 새로운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고시제도를 없애자는 것은 공무원 능력이 민간부문에 비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고, 판사나 변호사 능력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업무에 적합한 능력과 직업윤리를 가진 사람을 뽑는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시의 폐해를 줄이고 고시에 매달리는 사람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선발 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자격시험의 특징은 선발전 경쟁은 치열한 대신 선택된 후에는 경쟁에서 빗겨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도 필답고사가 아닌 면접 비중을 높여야 한다. 옛 말씀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사람을 뽑으려면 그 사람의 몸가짐을 직접 볼 수밖에 없다. 서류나 시험 답안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본 모습을 직접 보고 뽑는 수밖에 없다.
 현실 안주형, 체제 순응형 수험생을 양산하는 역동성 없는 사회가 될 경우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크다. 고시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현실 안주형, 체제 순응형 삶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관행과 함께 말이다.
 (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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