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최고 문장가 39인의 핵심 비결은?
  • 이경관기자
동서양 최고 문장가 39인의 핵심 비결은?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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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연구가이자 역사 평론가 한정주, 18세기 중심으로
박지원·日 작가 요시다 겐코 등 소개… 시대적 흐름 짚어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철학이 부재한 글은, 사유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그 글의 생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 평론가인 한정주는 글쓰기에는 반드시 철학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최근 그가 출간한 ‘글쓰기 동서대전’은 18세기를 중심으로 14~20세기에 이르는 동서양 최고 문장가 39인의 핵심 비결을 동심에서 자득까지 아홉 가지로 정리했다.
 저자는 박지원, 노신, 바쇼, 볼테르 등 잘 알려진 대가에서부터 그동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용휴, 이옥, 조희룡 등 조선 작가와 중국 작가 오경재, 장대, 서하객 그리고 일본 작가 요시다 겐코, 이하라 사이카쿠 등을 소개하며 그들의 글 속에 담긴 시대적 흐름에 대해 논한다.
 그는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 제국주의 사회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조선의 영정조 대와 중국의 강희제·건륭제 시대를 함께 위선의 시대로 규정짓는다.
 또한 일본 문화를 동아시아의 갈라파고스로 묘사하는 등 동아시아 문화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면서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글과 삶에 녹아 있는 인문학을 풀어낸다.
 18세기를 전후해 동서양의 글쓰기에서는 공통적으로 ‘동심’과 ‘어린아이’가 새삼 발견되고 강조됐다.

 조선에서 동심의 글쓰기를 대표할 만한 인물은 청장관 이덕무다. 그는 글쓰기는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천진’ 그대로이며, 처녀가 부끄러워하듯 감추는 ‘순수한 진정’ 그대로인데, 어찌 억지로 힘쓴다고 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18세기 이전 조선 문사들의 글쓰기는 성현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목적이 있는 글쓰기’였지만 이덕무의 글쓰기는 순수하게 자신의 동심에 따르는 글쓰기, 즉 무목적의 글쓰기였다.
 18세기 서양에서도 ‘어린아이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루소는 ‘에밀’에서 어린아이를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본원적 가치”로 자리매김한다.
 조선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풍자문학가를 꼽자면 박지원을 들 수 있다. 그는 ‘호질’, ‘허생전’, ‘양반전’ 등을 통해 풍자의 미학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특히 ‘호질’은 아바타 호랑이를 내세워 타락한 조선 사회와 양반 사대부를 질타한 풍자문학의 백미로 이것은 자신의 글을 겨냥한 사대부의 비난과 공격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박지원의 전략으로 보인다. 박지원의 아바타가 호랑이였다면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의 아바타는 고양이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19세기 일본 제국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태평의 일민’을 고양이의 눈을 통해 풍자하고 있다. 여기에서 ‘태평한 시대’란 메이지유신 이후의 근대 일본을 풍자한 용어다. 나쓰메 소세키가 본 근대 일본은 ‘태평한 시대’가 아니라 “이 사회는 미치광이들의 집합소”다.
 저자는 이외에도 소품의 글쓰기, 기궤첨신의 글쓰기, 웅혼의 글쓰기,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 자의식의 글쓰기, 자득의 글쓰기 등을 중심으로 문장가들의 글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 줄기를 이루고 있는 18세기는 지식과 개성이 만개 폭발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부르주아, 조닌, 중인 계층 등이 사회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는 경제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백과사전식 저술을 통해 지식이 대량 생산되었던 당시 상황은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지식이 폭발하는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한가? 이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동심의 글쓰기를 책의 첫머리에 놓은 까닭은 글쓰기에는 무엇보다도 개성과 자유,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갖춘 글이라면 비록 구성과 논리가 빈약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짜 글이 아닐까.
 한정주 지음. 김영사. 688쪽.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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