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개헌’에 불이 붙은 양상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취임 회견에서 ‘개헌’을 20대 국회 최대 과제인양 언급하자 여야 정치인은 물론 언론들까지 야단이다. 총선에서 낙선한 이재오 전 의원은 “개헌을 전제로 한 신당 창당”을 주장했다. 정치권 분위기는 마치 ‘개헌 전야’를 방불케 한다.
개헌 방향과 관련,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인류가 실험한 거의 모든 형태의 모든 권력구조가 망라되어 있다. 현행 5년 단임제를 찬성하는 의견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소속 정당과 처지에 따라 이해가 갈리기 때문이다. ‘개헌’에는 찬성하지만 정작 권력구조는 중구난방(衆口難防)인 셈이다.
중앙일보는 어제 “국회의원 203명이 개헌에 찬성”이라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개헌에 필요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했으니 개헌은 시간문제라는 뉘앙스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개헌은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개헌에 찬성했다지만 국민은 그 정도는 아니다. “개헌이 언제 가능할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국회의원 72.4%가 ‘20대 국회에서 가능하다’고 전망한 것과 달리 국민은 20대에 가능하다는 대답이 38.6%에 불과했다. 국민은 ‘개헌’이 안고 있는 난해한 방정식을 경험으로 꿰뚫고 있는 것이다.
권력구조로 들어가면 더 복잡해진다. 20대 국회의원 217명이 가장 선호한 통치권력구조는 135명(62.2%)이 선택한 대통령 중임제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이원집정부제는 16.1%, 의원내각제는 11.1%로 나타났다. 또 대통령 중임제는 20대 초선 의원(73.5%)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선수가 많아질수록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는 낮아져 재선은 52.9%, 3선 이상은 51.6%로 나타났다. 의회 경험이 많은 다선 의원들이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권력구조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국회와 일부 언론이 마치 개헌이 곧 이뤄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국민생각’에 비춰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특히 권력구조와 관련해 20대 국회의원의 62.2%가 대통령 중임제를 지지했지만 국민은 34.2%만 이 제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국민의 30.5%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선호함으로써 대통령 중임제와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30.5%는 현행 ‘5년 단임제’로도 충분한 데 왜 개헌으로 들쑤시느냐는 여론이라 할 수 있다. 즉 ‘개헌 반대’다.
‘개헌’은 헌정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능하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직후 ‘내각제’ 개헌과, 5·16이라는 정변에 따른 대통령 중임제 개헌, 그리고 10월 유신헌법 개헌, 12·12 사태 후의 ‘대통령 7년 단임제 개헌’ 6월 항쟁 이후 ‘5년 단임제’ 개헌이 모두 그렇다. 그런 역사에 비춰 현재의 개헌론은 명분과 절박성이 없다. “개헌한지 30년이 흘렀다”는 것은 이유가 되기 어렵다.
북한이 엊그제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의 턱 밑을 겨냥한 무력시위다. 미국에서는 북한내 핵시설을 폭격하는 시나리오가 연일 공개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우리 국회는 온통 “개헌”에 꽂혀있다. ‘개헌’만 하면 정치 갈등도 사라지고 경제도 좋아질 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20대 국회에 묻고 싶다. “개헌이 밥 먹여주나?”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