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쳐버리지 못하는 ‘여성의 굴레’ 섬세하게 그리다
  • 이경관기자
떨쳐버리지 못하는 ‘여성의 굴레’ 섬세하게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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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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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성차별에 휘둘리는 기혼·직장 여성 인생 다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165쪽)
 2016년 현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여권이 신장된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여성을 향한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의 부조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귀를 귀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한 조남주 작가가 최근 ‘여성’이라는 조건이 굴레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의 인생을 다룬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출간했다.
 이 책은 작가가 2014년 말 촉발된 ‘맘충이(‘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로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 사건을 목격한 뒤, 여성, 특히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충격을 받아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146쪽)
 소설은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시작한다.
 김지영 씨는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발화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녀가 선택한 이야기들이 바로 일생에 거쳐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 왔던 부당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고백은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116쪽)
 이 소설의 백미는 김지영 씨의 자기 고백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세밀한 심리 묘사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분히 쏟아 내는 그녀의 말들은 ‘김지영’을 이 시대 여성의 대변자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세하고 보편적이다. 더욱이 김지영의 이름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편적으로 그리기 위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 ‘지영’이기 때문이다. 김지영이라는 개인의 고백을 30대 여성, 나아가 이 시대 여성들의 고백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소설 속 나열된 에피소드는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 경험들로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이는 작가가 철저한 취재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들을 채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는 이 소설은 1982년생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시대의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 보여 준다.
 이 시대 모든 여성들에게 보내는 이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해 두렵고, 그렇기에 애잔하다.
  조남주 지음. 민음사. 192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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