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여행의 끝자락엔 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시기에 동생의 메시지를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나에게 여행은 ‘쉼표’였다. 치열하게 열정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잠시 쉬어가는, 잠시 재정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
한 문장이 길어질 때 문장의 깔끔함을 위해 문장의 매끄러움을 위해 문장의 이해도를 위해 쉼표를 찍어주듯이, 내 삶이 흐트러지지 않게 내 삶이 좀 더 매끄럽게 이어지기 위해 쉼표를 찍듯 여행을 선택한다.
첫날의 먹었던 분짜가 여행의 시작임을 알려주고 새로움과 즐거움을 줬다면, 여행의 막바지인 오늘 같은 분짜를 먹고있어도 조금 덜 즐거운 것은 아마도 여행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마지막은 아쉽다. 그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나는 베트남의 영원한 영웅이 잠들어 있는 호찌민 묘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입구에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기에 무엇일까했지 그것이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라고는 1도 생각하지 못했던 30대 입문자다.
그냥 다시 유턴해서 돌아갈까 했으나 호찌민 묘는 다른 말로 ‘호찌민 마우솔레움([Ho Chi Minh Mausoleum)’이라 불리는데, 이곳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 죽어서도 시신을 보존하며 많은 사람이 호찌민을 기리는 이유 또한 궁금해 그냥 가기로 마음 먹었다.
30대 입문자는 ‘제발 그늘아래에서 기다리게 해주세요’하며 끝줄을 향해 걸어갔으나 혹시나가 역시나 땡볕아래 자리를 잡았다.
호찌민 묘는 하노이 구시가지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1945년 호찌민이 베트남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역사적인 장소에 세워져 있다.
호찌민 묘는 매년 9월에서 12월 사이 시신 방부 정비와 시설 보수로 휴관을 하며, 매주 월요일, 금요일도 휴관이다. 그 외 정상적으로 관람가능한 날에도 오전 8~11시에만 관람이 가능하니 시간과 요일을 잘 계산해서 가길 바란다.
이른 아침을 먹고 호찌민 묘에 가는 길을 찾아보다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호찌민은 1969년 9월 2일 심장병으로 급사했다.
그리고 호찌민은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고 어떠한 우상화 작업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추종자들에 의해 레닌·스탈린·마오쩌둥 등의 여타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처럼 방부 처리돼 유리관 속에 안치됐고 정교하게 방부 처리된 시신은 매해 3개월간(9~12월) 러시아로 보내져 지속적으로 정비와 보존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본인의 유언과 달리 보존돼서일까 아니면 방부 처리 된 시신 때문일까. 마우솔레움을 방문하자 느껴진 기운은 황량함과 우울함이었다.
몸수색과 가방 수색을 마치고 핸드폰 촬영이 안된다고 엄히 말하는 경찰들을 지나 엄숙하고 어두운 기운이 넘실대는 곳으로 사람들의 뒤를 따른다. 들어가다 보면 호찌민이 생전에 가장 자주 인용했다는 ‘자유와 독립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란 구절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다 보면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지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엔 커다란 유리 상자 안에 낡은 황색 옷을 입은 채 누워 있는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그 유리상자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관찰을 할 수 있는데 48년이나 보존 된 시신치고는 너무 깨끗했고 3개월간 러시아로 넘어가 정비 보존 작업도 정말 만만치 않겠다는 것과 살아생전 자주 인용 했다던 ‘자유와 독립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정작 본인에게는 해당되고 있지 않음에 복합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본인의 유언인 화장해 전국에 뿌려지길 바랐던 마음과는 반대로 박제돼 한 곳에 안치돼 있는 지금 그에게 자유가 있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과 많은 감정들을 느낀 30대 입문자는 호찌민 묘를 나와 목적지도 없이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서서히 쨍해지는 태양 아래 정처 없이 걷기란 너무 무모한 짓인 걸 또 한 번 깨달은 30대 입문자는 서둘러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다음 여행지를 검색했다.
1886년 프랑스 식민 정부에 의해 지어진 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건축물로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하노이 대성당’, ‘성 요셉 성당’으로 향했다.
호 환끼엠 호수 근처를 여행하고 있다면 여기도 들려볼 것을 추천한다.
다른 나라들의 대성당들을 비교했을 때 규모면에서 작을진 모르겠으나 내부는 다른 곳에 뒤지지 않는 종교적인 힘이 배어나오는 곳이다. 외부를 세세히 관찰 시 겉 표면엔 곰팡이와 찌든 때들이 묻어 거뭇거뭇하게 보였으나 내부를 구경 했을 땐 외부의 곰팡이가 세월의 흔적이지 하고 합리화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 보는 미사 시간. 관광객들이 많은 내부에서도 그들만의 미사 시간은 투명막이 있는 듯 관광객들의 부산스러움이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듯했다.
내부 구경을 하다 자연스레 그들에게 눈길이 돌아간 30대입문자는 언어가 달라도 생김이 달라도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슷한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의 간절함을 바라보다 그들을 따라 생각하고 빌어봤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 행복하고 건강하길, 그리고 30대에 첫발을 디딘 내가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주변의 부산스러움은 전해지지 않더라도 나의 이 마음은, 그 부산스러움 속에서 나와 같이 자신의 소망을 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소원들이 어딘지 모를 목적지에 다르기를 바래보며 조심스레 대성당 내부 구경을 마무리했다.
내부에서 나오지 마자 베트남이 구나를 느끼는 정오의 온도. 40도가 육박하는 베트남의 날씨를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30대 입문자는 바로 옆에 위치한 콩카페와 맞은편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중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대성당 옆 콩카페는 아주 작다. 큰 테이블은 1개에 목욕탕 의자에 앉아 옹기종기 일자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6개 정도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에어컨이 없다는 것. 에어컨바람으로 땀을 식힐 생각이라면 맞은편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으로 가길 바란다.
30대 입문자는 여행의 막바지라 그런지 좀 더워도 여기서 마실 수 있는 코코넛 커피를 마시자며 콩카페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또 어디를 가볼까하다 이른 새벽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닌 내 몸을 위해 길거리에 많은 마사지 가게 중 한 곳에 들어간다. 근육재배치라는 말은 베트남 마사지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곳에서 30대 입문자는 또 한 번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그리고 또 베트남을 방문해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사람들이 입 모아 ‘마사지는 태국이지. 태국마사지’라고 하지만 마사지는 베트남이다. 왜 베트남마사지라는 가게가 없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나오는 2시간을 보낸 30대 입문자다.
먹고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의 막바지가 처음엔 아쉬웠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다시 베트남을 찾을 이유가 됐고 동기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30대 입문자는 다음에 와서는 이것을 해야지 하는 한 가지 정도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다른 나라에서 새롭고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면 베트남은 처음 와보는 여행자라도 익숙함과 편안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의 모습이 때때로 브라운관 속에서 보이는 우리나라 7~80년대의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30대 입문자는 생각한다. 훗날 내가 40대 입문자가 돼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때에도 지금 느끼는 이 편안함과 익숙함이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을까. 그때의 나는 이 베트남을 우리나라 어느 시기쯤에 비유를 하고 있을까.
그때에도 이 느낌을 다시 전할 수 있기를, 그 감정을 표현 할 수 있기를 바래보며 베트남 하노이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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