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廣場)에서 민주주의는 죽었다
  • 모용복기자
광장(廣場)에서 민주주의는 죽었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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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진영 머릿수 대결
광장정치로 대의정치 실종
촛불로 문 정부 탄생했지만
현재 ‘힘의 정치’ 논리 만연
否定만 있는 광장정치에선
정치·국가 발전 요원한 일
과거 허물기만 반복한다면
민주주의는 언제 꽃 피겠나
민주주의의는 광장에서 싹이 텄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오히려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고사(故死)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이틀 사이로 벌어진 양 극단의 두 집회를 보면 대한민국이 과연 법과 제도로서 굴러가는 나라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서로 ‘우리가 300만 모였니’하며 광장에 운집한 시민의 머릿수로서 세(勢)를 과시하고 상대 진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는 힘의 논리가 판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한 때 광장정치의 순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4·19혁명, 6·10민주항쟁, 그리고 가까이로는 3년 전 ‘국정농단 사태’ 때 박근혜 정권을 종식(終熄)시키고 현재의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장소가 다름 아닌 광장이요, 그 원동력은 민중의 힘이었다. 그러나 정권의 종식과 함께 종말을 고한 것처럼 보였던 광장정치가 사라지기는 커녕 갈수록 기세를 부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민의의 전당이자 정치 본무대인 국회를 박차고 나와 삭발투쟁을 벌이며, 진보진영은 조국(법무부 장관) 수호와 검찰개혁을 부르짖으며 3년 전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질세라 보수진영도 지난 3일 개천절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통해 정권 규탄을 위한 세를 과시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광장정치의 참모습이다.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축제를 벌이는 공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대화와 토론 마당으로서 민주정치를 꽃 피운 토대가 된 곳이었다. 우리 고대국가에서는 주로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해 활용돼 오다 일제강점기 들어 항일운동을 위한 장소로서 민중이 주도적으로 광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1898년 종로 광장에서 열린 민중대회인 만민공동회가 시발(始發)이 되어 일본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항거해 역사의 고비마다 광장정치는 큰 힘을 발휘했으며, 급기야 최근 들어서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어 내는 ‘성과’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광장정치 성과에 입맛을 들인 나머지 제도정치는 실종되고 말았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반대세력을 제압하려는 폭압적 행태가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다. 소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사파리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도 모두 입으로는 혁신과 개혁을 부르짖지만 법과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지세력의 동조와 심지어 시위 군중의 머릿수를 보고 진퇴(進退)를 결정하는 형국이다. 비근한 예로 과거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요구 관철을 위해 최후 수단으로 감행했던 삭발투쟁을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누가 봐도 그들은 약자가 아닌 기득권층에 가까운데도 말이다.

광장정치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장 극명한 형태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국가 정책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민회에서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국민이 직접 정치결정에 참여하는 게 불가능하게 되자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직접 민주주의 대신 간접 민주주의(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통치자들이 사적으로 권한을 남용하거나 부정하게 사용할 때 국민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전당인 광장을 통해 간접 민주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아 온 것이 우리 현대사다. 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 또한 컸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광장정치가 아테네처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거나, 독재정권의 부조리를 혁파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과거를 부정하고 뒤엎는 데만 치중하다 보니 건설적인 대안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 정권을 오직 ‘악의 축’으로만 규정짓고 그 속에 몸담았던 사람들을 부역자, 적폐세력으로 몰아붙여 반드시 청산해야할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 조선시대 붕당(朋黨)정치의 폐해인 당파싸움이 수 백 년 세월을 건너뛰어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지금 정치판은 총칼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살육(殺戮)의 현장이나 다를 게 없다. 보수-진보 진영에서 벌이는 대규모 집회에 참여한 군중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대의(代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정(否定)의 정치에서는 정치발전, 나아가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의 것을 뒤엎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법과 제도 도입을 반복한다면 성숙한 민주주의는 영원히 이 땅에서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고층 건물을 올리는데 겨우 1, 2층을 짓다가 허물기를 반복한다면 언제 건물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은 아닐까?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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