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법과 사형(死刑)제도
  • 모용복기자
8조법과 사형(死刑)제도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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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8조법 첫조항 사형제
인간 생명 중시 사실 보여줘
화성사건 이춘재 자백 계기로
사형제 존폐 논란 수면 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법(法)은 고조선의 8조법이다. 먼 옛날 환인(桓因)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비와 바람, 구름을 다스리는 신하와 3000명의 무리를 데리고 백두산으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다가 웅녀와 결혼해 단군(檀君)을 낳았으며, 단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웠다. 고조선은 인구가 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이 우리나라 최초의 법전인 8조법이었다. 8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법은 그 중 3개 조항만 전해지고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을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남을 때려 다치게 한 사람은 곡식으로 보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그 물건의 주인집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만약 풀려나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

이 내용들 속에는 당시 사회상과 생활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첫째 조항에서 고조선이 인간의 생명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결코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다. 단군신화를 보면, 환웅이 인간세계로 내려온 것은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을 실현하기 위함이요,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인간 사회의 온갖 일을 주관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 고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법이 인간생명 중시를 첫째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인 대가를 목숨으로밖에 갚을 수 없음은 그만큼 타인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고조선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고대국가들이 이와 비슷한 사형(死刑)제도를 시행했다. 심지어 성경에서조차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罪目)을 나열해 놓고 있다. 그러면 왜 고대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법 제도를 선택했을까? 다양한 원인들이 추측 가능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회질서 유지’가 아닌가 싶다. 만약 고대국가의 구성원 중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살인자가 태형(笞刑)이나 장형(杖刑)과 같은 형벌을 받고 풀려나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유의 몸이 된다면 사망자의 유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들은 분노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복수를 하게 되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아 마침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게 분명하다. 이러한 피해 유가족의 울분을 달래고 분노로 인한 복수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목숨 값은 반드시 목숨으로 치르게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 천 년 동안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형제도는 계몽주의와 인도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폐지했다. 우리나라도 사형제도가 있긴 하지만 지난 1997년 이후 단 한 건도 집행된 적이 없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 해도 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끊임없이 있어왔으며, 지난 10일 ‘세계 사형제 폐지의 날’에 맞춰 이상민 의원을 포함한 여야 국회의원 76명이 공동으로 ‘사형제 폐지 법안’을 또다시 발의했다. 이번이 벌써 8번째다.

15대 국회 이후 새로운 국회가 들어설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사형제 폐지 법안이 발의됐으나 지금껏 한 번도 통과된 적이 없다. 과거 7개 법안 모두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그런데 이번엔 기류가 좀 다르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 법안 통과에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는 큰 조력자가 나타난 것이다. 다름 아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가 그 장본인이다. DNA 분석을 통해 유력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가 경찰과의 끈질긴 밀당 끝에 마침내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그동안 모방 범죄로 여겨지던 8차 사건마저 자신의 범행이라고 털어놓자 수사당국을 포함한 온 나라가 멘붕에 빠졌다. 당시 이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돼 20여 년간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근 경찰의 고문과 강압에 의해 거짓자백을 했노라며 법원에 재심(再審) 청구를 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만약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994년 처제를 잔인하게 살인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장기복역 중인 이춘재가 모범수로 분류돼 가석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국민들 또한 적지 않다. 이와 같은 흉악범을 단죄하는 수단은 사형제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우리 헌법상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권을 박탈하는 형벌로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에 위배되며 일반인에 대한 범죄 예방효과가 별로 없고 피해자의 구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칫 오판(誤判)이라도 생길 경우엔 회복불능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사형이 주로 연쇄살인마나 패륜적인 흉악범에 대해 내려지는 형벌이며 지금은 과거와 같이 강압에 의해 범인이 조작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 남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 그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살인마의 인권이 헌법이라는 미명하에 과연 보장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만약 그가 형기(刑期)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다면, 아니면 오랜 기간 감옥에 있을지라도 그에 대한 유가족의 고통과 분노는 그가 목숨으로 대가를 치른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따라서 피해자의 구제에 도움 안 된다는 주장은 이들의 감정을 간과한 측면이 크다.

고조선의 8조법은 원초적이지만 법 감정에 가장 충실한 제도다. 그 첫째 조항인 사형제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사람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역설(逆說)의 법이요 홍익인간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법이었다. 비록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했다 할지라도 법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결코 변할 수 없다. 법은 가해자보다 피해자 편에 서는 것이 합리적이다. 남의 인권을 함부로 유린한 자는 법으로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상실돼야 마땅하다. 사형제도는 수 천 년 동안 사회질서를 유지시키고 수 많은 억울한 피해자들의 원혼(怨魂)을 어루만져온 법인 까닭에 가벼이 그 폐지를 결정해선 결코 안 된다. 물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법과 제도적 장치 또한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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