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정치’
  • 모용복선임기자
‘미나리 정치’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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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영화 ‘미나리’ 열풍
미국인들 향수 자극해 큰 인기
국내서도 재보선 바람 거세어
후보 합종연횡 대선풍경 방불
능력보다 인물위주 후보 결정
지역발전·주민 삶 증진에 역행
국민위한 ‘미나리 정치’ 아쉽다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채소가 미나리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특별히 손길을 안 줘도 잘 자란다. 또 잘라도 금새 자라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옛부터 서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채소였다. 숙종 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빗대어 불렸다는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일세’라는 노랫말에는 이러한 서민들의 미나리 사랑이 잘 담겨 있다.

지난 주 지인으로부터 받은 청도 한재미나리 세 단. 이웃에 나눠주고 남은 한 단을 일주일 내내 먹었다. 생으로 쌈장에 찍어먹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기도 했다. 그래도 남은 것은 불판 위에 올려 삼겹살과 같이 구워 먹었다. 파릇한 미나리 특유의 맛과 향이 오감을 즐겁게 했다.

미나리는 추위를 먹고 자라는 채소다. 그래서 서민들의 삶을 닮았다. 겨울이 추울수록 대궁이가 굵고 실하며 맛과 향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 한약명으로 ‘수근(水芹)’ ‘수영(水英)’이라 불리며 각종 비타민,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해독과 혈액을 정화시키는 효능을 지닌다. 겨우내 몸속에 쌓인 독소와 노폐물을 씻어내는 데는 봄철 미나리만 한 식품이 없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3월, 현대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

봄 미나리가 우리에게만 유익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 뿌린 미나리 씨앗이 이국 만리 미국에서도 자라나 미국인 가슴 속에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영화 ‘미나리’ 얘기다.

원로배우 윤여정이 열연한 ‘미나리’는 아칸소라는 시골마을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미국 정착 분투기를 그린 영화다.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는 이민 간 딸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갖가지 한국음식과 미나리 씨를 싸들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가족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국채소를 심어 판매할 계획을 세우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순자가 가져와 아무 곳에나 씨를 뿌린 미나리만 살아남는다. 윤여정이 한 극중 말처럼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는 제목이 암시하듯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 이민자들의 삶이자 전체 한국 서민들의 삶이다.

‘미나리’는 전 세계 언론들로부터 시공(時空)과 국적을 초월해 보편적 호소력과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는 찬사를 등에 업고 상을 휩쓸고 있다. 제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자국 영화 경쟁 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 2관왕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및 미국배우조합상(SAG) 후보에 오르면서 전 세계 74관왕 157개 노미네이트를 기록했다. 또 4월 열리는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유력 후보작으로도 꼽히고 있다. 한 마디로 열풍을 넘어 ‘미나리 광풍’이다.

지금 국내에서도 미나리 못지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제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를 확정했으며, 민주당도 범여권 후보간 단일화 작업이 한창이다. 대한민국 1, 2의 도시 수장(首長) 선출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눈은 단체장 선거 너머로 향한다. 일찌감치 이번 보선을 내년 3월에 있을 대선 전초전으로 규정짓고 건곤일척 승부를 벌일 태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후보들 간 합종연횡(合從連橫)은 흡사 대선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이번 선거에 거는 기대와 비중이 크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여야가 들이는 공(公)에 비례해 효용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체장 선거는 어디까지나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행사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정치 셈법에 따라 능력보다 인물 위주로 후보를 정하고 또 당선된다면 이는 지역주민에게 있어 비극이다.

지역발전과 주민 삶의 질 증진을 위해선 지역실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단체장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럴려면 주민과 함께 동거동락 하며 밑바닥 정치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온 인사가 후보가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양상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유력한 여야 시장 후보 대부분이 국회의원이거나 전직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인 지방의회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로서 어찌 보면 ‘낙하산’에 가깝다. 만약 이러한 후보가 단체장이 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디테일에 약해 인기 영합적이고 가시적인 치세에만 열을 올린 나머지 주민들의 삶은 ‘도루묵’이거나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다. 중앙에 예속된 우리 지방정치의 현주소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미나리처럼, 전 세계에 한국영화 위상을 드높인 ‘미나리’처럼 정치도 국민에게 피가 되고 살이 돼야 한다. ‘그들만의 정치’가 아닌 국민에게 이로운 ‘미나리 정치’는 실현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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