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사회-‘기레기’를 넘어 언론계 ‘기린아’로
  • 모용복선임기자
불신사회-‘기레기’를 넘어 언론계 ‘기린아’로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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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 불신풍조 만연
언론 불신사회 주범으로 꼽혀
정부·사법부·정치 등 모든분야
국민 신뢰 잃은 지 이미 오래
불신풍조는 개인 불행을 넘어
국가경제 약화 초래하는 요인
공동체 파괴시켜 분열 초래도
경북도민일보, 창간17년 맞아
지역민 신뢰얻는 참언론 다짐
모용복 선임기자.
요즘은 사라졌지만 한 때 포항 죽도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이 목에 팻말을 건 채 확성기로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다. 팻말에 적힌 문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종교적인 의미겠지만 따지고 보면 현실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 이웃 간에 서로 믿지 못하고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굳이 사후(死後)가 아니더라도 삶이 곧 지옥이다. 또 국민이 정부와 사법부, 정치권, 언론을 불신한다면 나라 안이 평안할 리 없다.

불행하게도 현재 대한민국은 불신풍조가 만연한 사회다. 특히 언론은 대한민국을 불신사회로 몰아가는 주범으로 꼽힌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1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아시아 1위를 지켰다. 반대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꼴찌를 기록 중이다. 가장 자유를 누리는 언론이 가장 불신을 받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언론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요즘 항간에서 유행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 합성어)란 신조어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기사에 댓글로 ‘기레기’라는 표현을 썼다가 2심까지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람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해당 표현이 기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드러낸 ‘모욕적 표현’이긴 하지만 기사의 성격 등을 따져보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레기’라고 욕을 먹어도 싼 기자들이 넘친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언론사는 제도권, 비제도권, 인터넷을 통틀어 2만개가 넘으며, 기자들도 3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언론 홍수시대에서 소위 ‘정론직필’을 하는 언론과 기자들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살아남기 위해 정치·경제 권력들과 결탁해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의적인 보도를 하고 비판을 휘두른다. 이러한 언론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들은 정보의 홍수시대가 낳은 부작용이요, 사생아들이다.

국가권력에 대한 신뢰도 바닥이다. 영국 레가툼 연구소의 지난해 사회자본(개인 간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신뢰 정도) 조사에서 한국은 167개국 중 142위에 그쳤다. 짐바브웨(110위)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았다. 사실상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최근 터진 LH사태를 고려하면 내년엔 이 보다 순위가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더 심각하다. 법원이 ‘고무줄 형량’으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사법농단’과 ‘대법원장 거짓말’로 판사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국민신뢰는 더욱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 사법부 신뢰도는 39위(27점)로 꼴찌였다. 회원국 평균(54점)의 절반 수준이다.

검찰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의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65점으로 법원(2.80)이나 경찰(3.09)보다 낮았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는 이미 도를 한참이나 넘었다. ‘김학의 사건’ 등으로 국민적 공분과 지탄을 받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개혁에 집단행동으로 무력시위를 벌인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지탄을 받는 곳은 역시 정치권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회는 7년 연속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으로 꼽혔다. 또한 2013년 통계 작성 이래 계속 최하위권을 차지하는 영광을 이어오고 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다. 즉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국회의원)를 직접 뽑아 국회로 보내 공동체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이 자신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을 못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저(低)신뢰 사회는 개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본래 군집동물인 인간은 이웃을 믿고 살아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만약 불신이 가득차면 분노가 일고 그로 인해 끊임없는 갈등과 다툼이 생기게 된다. 가정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끔찍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도로에서는 사소한 시비로 인해 보복·난폭운전이 난무한다. 오늘날 불신과 분노로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저신뢰는 개인을 넘어 국가경제와도 직결된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10%포인트 올라가면 거래비용이 줄면서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높아진다고 한다. 결국 우리사회에 만연한 이러한 불신풍조는 국가와 경제발전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파괴시켜 분열과 갈등, 대립을 가속화시킨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 불신을 단지 개인 차원에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각종 기관에서 해마다 내놓는 신뢰도 조사를 단순히 박제된 점수로만 여겨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뢰 회복은 단지 한 기관이나 단체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국민 불신을 부채질하는 주범으로 꼽히는 언론은 뼈저린 반성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경북도민일보는 오늘 창간 17주년을 맞아 언론의 사명을 새롭게 돌아보고 정확한 뉴스와 정보 제공, 건강한 비판을 통해 지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참언론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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