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적응과 회복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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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적응과 회복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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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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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막론하고 최근 학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개념은 ‘회복력(Resilience)’이다.

자연재해와 같이 예측하기 어려운 충격을 겪은 사회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요건과 역량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한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은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적응력이요, 나머지는 지금 말한 회복력이다.

적응력이란 어떤 변화의 흐름이 다가올 때 이를 큰 탈 없이 받아들이면서 사회체계를 그에 맞추어 조정해갈 수 있는 능력이다. 한편, 회복력이란 부정적인 변화가 찾아왔을 때 그 충격을 때로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저항해가면서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이렇게 보면 팬데믹의 극복도 결국 한 사회가 적응력과 회복력을 얼마나 적절히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하겠다.

팬데믹 초기 한국사회는 놀라운 수준의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지역을 자발적으로 셧다운했던 대구경북민의 결단, 몇 시간씩 줄을 서서라도 마스크를 쓰려 노력하던 전 국민의 모습에서 이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뉴노멀, 즉 새로운 일상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해간 것이다. 사람의 숫자까지 세어서 규제하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정부규제에도 국민들은 잘 따라 주었다. 심지어 규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시민들 스스로가 제압(?)했다는 뉴스도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 어느 곳보다도 팬데믹을 잘 흡수한 사회로 변모해 버렸다.

그에 비해서 외국, 특히 미국과 유럽 사회의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적응보다는 저항이 더 많았다. 방역을 위한 정부규제를 개인 자유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투쟁하는 시위가 거리를 덮을 지경이었다.

수십만 명이 감염되는 와중에도 마스크는 쓸 수 없다며 버티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행정명령 앞에서 종교와 집회자유가 더 중요하다며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어떤 위협이라 해도 개인의 자유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의식의 단면이 드러난 장면들이다. 우리 사회와는 달리 뉴노멀에 대한 적응 보다는 일상의 회복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그들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상은 안정적으로 진행된 한국의 방역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었고, 그래서 K-방역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신 접종과 함께 이제 세계가 회복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시점에서 그 평가는 또 달라지고 있다. 한때 뉴노멀을 인정하지 못해 혼란을 겪던 그들이 이제는 빠르게 회복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수준의 자원을 퍼부어 단기간에 백신을 개발해내더니, 곧이어 빠른 접종을 통해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개막전에서는 4만2000여 관중이 운집하며 다시 찾은 일상을 뽐냈고, 영국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항체를 가지게 되면서 석 달 만에 도시를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한편, 적응력을 바탕으로 잘 버텨오던 한국은 여전히 팬데믹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백신 접종은 계속 연기되고 있고, 방역 통제는 더 강화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팬데믹은 이제 완전히 생활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어린아이들 입에서 마스크를 벗기면 오히려 울음을 터뜨린다고 하고, 학교에서는 현장수업을 한다고 하면 교사나 학생 모두가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예배와 같은 종교행사는 아예 온라인 문화가 되어버렸고, 제사문화도 팬데믹을 틈타 급속히 정리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단지 적응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 내지 변형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쯤에서 우리가 다시 상기했으면 하는 것은 뉴노멀이 결코 우리의 본모습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뉴노멀은 분리와 해체, 통제를 사회 가운데 은근슬쩍 가져오면서 힘들게 쌓아 온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 문화를 순식간에 뒤흔들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말이 좋아 ‘뉴노멀’이지, 위기시대에 필요한 비상대책일 뿐, 거기에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그 어떤 가치나 문화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뉴노멀에 적응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 저변에는 ‘회복’에 대한 변함없는 갈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적응을 잘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아예 원래의 모습을 망각해 버리게 된다면, 이야말로 바이러스보다 더 지독한 사회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회복력을 잃은 사회야 말로 진정한 재앙인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벼룩이 무려 1미터 가까이를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을 작은 병 안에 가둬 놓고 기르다 보면 밖으로 나와서도 병 높이 이상은 뛰어오르지 못하도록 퇴화되어버린다고 한다. 잘 적응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다가 가진 잠재력마저 다 잃어버린 꼴이 된 것이다. 적응과 통제만을 능사로 생각하다가 자칫 사회의 탄성과 회복력이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시기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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