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왜 아스파라거스 연서를 썼을까?
  • 뉴스1
괴테는 왜 아스파라거스 연서를 썼을까?
  • 뉴스1
  • 승인 2021.0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의 작가·예술가 중 최고의 미식가는 누구일까?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근거로?”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대답은 명료하다. 기록이 말한다.

괴테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글을 써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미식(美食)과 관련된 상당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저작, 일기, 편지에 식도락 이야기가 풍성하다. 미식 탐닉은 문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중요한 키워드다.

괴테가 타계 2년 전에 완성한 ‘이탈리아 기행’은 상당 부분이 식도락 이야기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독일에서 태어나 북국(北國)의 우중충한 하늘만 보다가 남국(南國)의 쨍쨍한 태양을 접한 괴테는 이탈리아의 흙과 바람에 넋을 잃는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이탈리아는 기후대가 다양한 만큼 지방색이 강한 나라. 그는 로마에서 시칠리아까지 여행하며 각 지역의 요리와 상차림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다. 얼마나 자세하게 기록했던지 요하임 슐츠라는 작가는 음식 이야기만을 따로 모아 ‘훌륭한 요리 앞에서는 사랑이 절로 생긴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시칠리아 없는 이탈리아를 그려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곳이야말로 모든 곳으로 가는 열쇠이다. 나는 이 섬에서의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해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짧은 에세이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수원의 과일들은 황홀 그 자체이다. 특히 부드럽고 맛있는 샐러드는 입속에서 녹는 것이 마치 우유를 마시는 듯하다. 왜 고대인들이 시칠리아 샐러드를 락투카라 했는지 이해할 것 같다. …’(이탈리아기행)

마블링이 좋은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즐기는 것은 보편적인 입맛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생선도 마찬가지다. 바닷고기든 민물고기든 생선 싫어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모든 봄은 새봄이다. 새봄을 맞은 우리가 괴테의 미식 리스트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그가 아스파라거스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776년 초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원 고문으로 영입된다. 바이마르 행(行)은 아우구스트 대공의 앙청(仰請)으로 이뤄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간으로 전 유럽에서 이름을 얻은 직후였다. 스물일곱, 한창때다.

1776년 5월, 바이마르에 살면서 그는 마음에 둔 한 여인에게 편지를 쓴다. 일종의 연애편지인데, 아스파라거스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으로 정원의 온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했습니다. 이 아스파라거스를 다른 것과 함께 섞지 말고, 혼자만 드십시오. 그래야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게 될 테니까요. 제가 당신과 함께 이걸 먹는다면 최고로 맛이 있을 텐데. 오늘 점심때는 어떨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방문해도 좋을까요? 이곳은 여전히 조용합니다. 당신과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아듀. G.’

‘아스파라거스 연서’는 그 뒤로도 여러 번 등장한다. 왜 연애편지에 아스파라거스를 등장시켰는지에 대한 설명은 뒤로 남겨둔다.

사람의 입맛은 세월에 따라 변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것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찾는 경우도 있고, 반면에 젊을 때 좋아했지만 멀리하게 되는 음식도 있다. 괴테의 경우,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애정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최초의 아스파라거스 연애편지를 쓴 지 22년이 흘렀다. 작가의 나이는 마흔아홉. 괴테에게는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1798년 봄, 잠시 바이마르 인근 도시 예나(Jena)에 머물 때 바이마르의 아내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에게 편지를 쓴다.

‘내 몸의 영양 상태가 훨씬 좋아졌소. 트라비티우스 부인은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아주 잘하고, 가끔은 달걀 케이크도 만들어주지요. 실러의 집에서 나에게 스테이크 요리를 해주고, 당신이 보내준 소스가 샐러드의 맛을 더해 주어 입맛을 되찾았소.’

로마의 상류층의 음식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는 18세기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급채소다.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이미지 사진에 보면 으레 아스파라거스 세 줄기가 조연으로 출연한다. 살짝 떫은 것 같으면서도 아삭거리는 식감을 한번 맛보고 나면 대뇌가 아스파라거스를 잊지 못한다. 유럽 사람은 봄철 채소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코스 식사에서 전채로 즐긴다. 살짝 데친 아스파라거스를 마요네즈를 찍어 먹는다. 녹색 아스파라거스는 주로 크림 수프용으로 사용된다. 구운 아스파라거스에 햄, 찐 감자, 삶은 계란을 곁들이면 훌륭한 식사가 된다.

다년생 식물인 아스파라거스를 인간이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3000년, 아스파라거스는 이집트 무덤 벽화에 등장했다. 고대 로마의 쾌락주의자들은 알프스에서 나는 아스파라거스를 특상품으로 쳤다. 쾌락주의자들은 알프스산맥 아스파라거스를 대량으로 사들여 냉동 보관했다가 쾌락주의자 축제에 사용했다.

왜 로마의 상류층은 아스파라거스를 비축했을까. 아스파라거스가 성욕 강화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통념이 생겼나. 새순의 생김새 때문이다. 이른 봄 흙 속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아스파라거스는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서양에서 강정제나 최음제로 통했다. 인도의 성애 교본 ‘카마수트라’에도 아스파라거스가 등장한다. 아스파라거스는 21세기의 비아그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귀족의 채소’로 대접받던 아스파라거스는 중세의 수도원과 수녀원에서는 철저히 금지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요리책에 아스파라거스에 대해 언급했다. ‘아스파라거스 가는 줄기를 삶아 소금, 향유, 후추로 맛을 내면 아주 근사해 보인다. 이 요리는 부은 위장과 다른 속병을 고쳐주고, 어깨나 허벅지 통증을 없애주며 설사약으로도 능력을 발휘한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 내에 전용 온실을 설치해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했다. 온실 덕분에 태양왕은 겨울부터 아스파라거스를 맛볼 수 있었다. 프랑스 왕실은 정찬 코스에 반드시 아스파라거스를 포함시켰다. 프랑스에서는 막 결혼한 신랑이 초야(初夜)를 치르기 전에 세 코스에 걸친 아스파라거스를 먹었다고 한다. 오늘날 프랑스 가정에서는 가리비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페투치네, 아스파라거스와 캐슈너트 오믈렛, 허니머스터드 소스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등을 즐겨 먹는다.

아스파라거스 하면, 냄새를 빼놓을 수 없다.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소변을 보면 간혹 역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아스파라거스 산(酸)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휘발성 유황 부산물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7권)는 ‘궁극의 문학’으로 불린다. ‘바늘 끝 같은 섬세한 감각으로 한 인간의 개별적 삶과 시대상을 통째로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에 보면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내 변기를 향긋한 향수병으로 바꿔놓는다.” 실제로 프루스트는 고모 집에서 지낼 때 아스파라거스를 자주 먹었다. 프루스트가 어린 시절 한때를 보낸 콩브레 마을의 고모 집은 현재 프루스트 기념관으로 사용된다. 기념관 1층 식당에는 고모 가족들이 사용한 식기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중에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조각된 접시도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스페인 속담에도 등장한다.

“4월의 아스파라거스는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5월의 것은 주인에게, 6월에 난 것은 당나귀에게 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스물일곱 괴테는 마음에 둔 여인에게 ‘아스파라거스 연애편지’를 잇달아 보냈다. 작가는 자유연애를 꿈꿨다. 아스파라거스는 작가의 강력한 성적 욕망의 은유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글을 쓰다가 눈을 감은 괴테의 마지막 시간을 부러워한다. 괴테는 가슴 설레고 두근거리는 삶을 추구했고 그렇게 살았다. 두 가지가 사랑과 음식이었다. 아내가 죽고 몇 년 간 외롭게 지내던 괴테는 한 귀족 부인의 10대 딸을 연모한다. 실제로 문호는 유명한 온천 휴양지 칼스바트에서 그녀에게 청혼하기도 했다.

아스파라거스 마니아들은 매년 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슈베징겐으로 몰려든다. 독일산 아스파라거스는 세계 최상의 품질로 평가받는다. 독일 서부 지역 여러 곳에서 아스파라거스가 생산되지만 슈베징겐은 ‘세계 아스파라거스의 수도’를 자처하며 축제를 연다. 축제 기간 갖가지 아스파라거스 요리가 나온다. 이중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데쳐서 오란데이즈 소스를 뿌려 먹는 것이다.

봄꽃이 흐드러진 날, 삼시 세끼 아스파라거스만 먹는 슈베징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성관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