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같은 오랑캐들의 난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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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같은 오랑캐들의 난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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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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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어느 가을날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 갔었다.

호젓한 광산문우에서 고희를 넘어선 대작가이자 천부적 이야기꾼 이문열의 흔적에 흠뻑 취하고 집으로 오는 길, 그의 세계를 훔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윽고 이문열 단편집 몇 권을 집에까지 가져왔다.

여태껏 이문열의 소설을 자의로 읽은 적은 없었다.

서울대 수석합격생이 여러 번 읽었다고 하여 어머니의 성화에 마지못해 완독한 삼국지(물론 필자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진 못했다.)와 고교시절 수능을 위해 문제집에서 만난 금시조 등 여러 소설들은 내가 의욕한 바 없었다.

그런데 빌려온 단편집 중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인 내 눈을 잡아당긴 소설 하나가 있었다. ‘분호난장기(糞胡亂場記)’였다.

똥 같은 오랑캐들의 난장판을 기록한다니, 자극적인 제목에 우선 집중했다가 내가 맞닿은 현실을 곱씹으며 읽어갔다.

소설의 내용은 이러하다.

바야흐로 1970년대 선거인이 5천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치러진 통대선거(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선거)에서 이류급 인사 13명이 난립하며 비현실적인 약속, 혹독한 인신공격, 돈거래가 난무하는 가운데, 가장 비열한 인물인 ‘총대’가 통대로 당선이 된다.

각종 부정으로 얼룩진 당시 선거의 부조리와 그 문제의식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눈을 감고 ‘우리는 현재 얼마나 전진했는가?’, ‘최근 선거와 소설 속 과거 선거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고민해봤다.

우리나라, 우리국민은 짧은 역사 속에서 많은 것을 이뤄낸 위대한 국가이자 국민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역시 빠르게 안착시켜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상황에서도 손소독과 비닐장갑이라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며 투표소로 향하는 모습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피길 기다리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서구 이방인의 지난 걱정이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그리고 이런 증명을 켜켜이 쌓아올려, 각 선거마다 가당치 않은 약속과 일그러진 비방보다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한 세력이 승리하는 우리의 정치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끊임없이 국민에게 보다 더 합리적인 정책과 비전을 제시한 정치인 및 그 소속 집단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돈과 거짓말에 기댄 생태교란종이 발호하여 반칙하려 들 때 억제하고, 정치인과 그 집단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은 꾸준히 기억될 수 있도록 기록한다.

그 예로 ‘정책‧공약알리미 사이트(policy.nec.go.kr)’에서는 선거 시 후보자의 정책공약과 선거 후 직전 선거에 있어 정당과 당선인의 정책, 공약을 음미할 수 있다.

국민으로서, 유권자로서의 역할은 단순히 합리적인 정책에 표를 던지는 것에 더해 꾸준한 관심으로 당선자의 약속과 정책이 잘 지켜지는지 판단하여 다음 선거 때 비중 있는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다. ‘정책에 대한 올바른 선택’이라는 순환 고리가 단단히 결속되어 있어야 생태계의 영속적인 구가가 가능하다.

내년은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현재의 정치지형을 뒤흔드는 엄청난 정치 이벤트가 다가오는 것이다.

정치인과 그 소속집단인 정당은 맹목적인 승리를 위해 똥과 오랑캐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정책을 기억하고, 미래지향적 공약, 정책에 투표하는 우리의 정치 생태계가 건강하게 존속하는 한 그 똥과 오랑캐는 꽃과 신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때 꽃과 신사가 만드는 아름다운 무대를 기꺼이 기록하고 기억하자.

박창재 영주시선거관리위원회 회계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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