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와 모방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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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와 모방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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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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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포항의 바다 경관에 또 큰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해맞이 공원 언덕 위에 ‘클라우드’라는 이름의 거대 조형물이 들어선다고 한다. 산 정상에 구불구불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마치 구름이 머무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한다. ‘연오랑세오녀’를 상징하는 구조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솔직히, 쉽게 마음에 와 닿는 상황은 아니다. 주변 지인들도 대부분 우려 섞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경관훼손이나 구조물의 안전성도 걱정되지만, 우선 그 구조물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지가 판단이 잘 안된다고들 한다.

물론 사람들의 의견이 이 조형물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후 지역을 상징하는 굴지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파리의 에펠탑이 바로 그랬다. 1889년 파리의 아담하고 고풍스런 도시 경관 속에 뜬금없이 우뚝 세워진 철골 구조물이 바로 에펠탑이다. 이 새롭고 이질적인 구조물에 당시 파리의 지식인들 상당수는 극도의 비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서도 모파상의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모파상은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 구조물을 극도로 반대했고, 그 꼴이 보기 싫은 나머지 심지어 에펠탑 내부 레스토랑을 늘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에펠탑은 파리와 뗄 수 없는, 상징과 같은 랜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모파상의 소설을 못 읽은 사람은 많아도 에펠탑을 못 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모파상이 살아 있으면 민망해할만한 일이다. 당대 최고 소설가도 에펠탑의 가치를 다 들여다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에펠탑은 그저 쇠로 만든 탑이 아니었다.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고유한 상징물이었다. 혼란했던 시민혁명 시대를 마무리하는 사회적 진보의 상징인 동시에, 현대 도시의 경관을 송두리째 바꿔줄 ‘철골구조’라는 기술적 진보의 서막이기도 했다. 통신타워로도 활용되면서 정보통신 시대의 도래를 알리기도 했다. 파리의 중심부에서 역사와 문화, 기술의 진보가 서로 만나며 나타난 교점에 바로 에펠탑이 세워졌던 것이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지 않을 수 없던 이유가 바로 에펠탑의 이런 ‘고유성’에 있다고 하겠다.

결국, 클라우드가 포항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그것이 얼마나 고유성을 담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라우드는 지역의 고유한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작가인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부부는 이미 뒤스부르크에 클라우드의 원작에 해당하는 ‘호랑이와 거북이’를 설치한 바 있다고 한다. 언뜻 보아도 클라우드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작품이다. ‘연작’이라는 명칭으로 유사작품을 만들기도 한다지만, 한 도시를 대표해야 할 랜드마크가 연작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독일에서 ‘호랑이와 거북이’인 것이 왜 포항에서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되는지도 의문이다. 여건도 장소성도 다른 도시의 작품이 그저 유명세를 타고 ‘복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노파심이 아닌 것은 이미 포항에 많은 모방품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회루를 축소한 영일대 누각이 그렇고, 청계천을 뒤따른 포항운하가 그렇다. 파리 빌레뜨 공원의 ‘폴리’를 본뜬 ‘워터폴리’가 그렇고, 창원의 창동예술촌을 모델로 한 꿈틀로가 그렇다. 서울 경의선숲길은 포항의 철길숲이 되고,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은 중앙상가의 야시장이 되었다. 최근 건설되는 케이블카도 여수와 사천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솔직히, 복제나 모방이 아닌, 지역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사업을 찾기 쉽지 않을 지경이다.

물론 잘된 사업을 모방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장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에 따르면, 어차피 원본과 복제본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뒤섞여 있는 곳이 현대사회이기도 하다. 모방하고 복제하더라도 지역에서 잘 소화해 정착시키면 그 또한 창조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포항의 현실은 창조적인 모방이라기보다 ‘잘 나가는 것’들을 수입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는 것이다. 구상은 짧고 개발은 빠르기만 한 것이 그 증거이다.

산과 바다의 모습을 바꿀 사업들이 마구 진행되어 가는데, 그것들이 만들어갈 포항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속 시원히 정리해주지 못하고 있다. 좋은 조각들을 가져와 맞춘다고 좋은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도시는 더욱 그러하다. 좋은 사업들을 가져와 뿌려놓는다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도시가 될 수는 없다. 복제와 모방도 모두 녹여 지역에 자리 잡게 해 줄, 그런 지역의 정체성과 고유성에 대한 큰 그림은 있는지 묻고 싶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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