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섬'에서 플라스틱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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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섬'에서 플라스틱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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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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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플라스틱 제로 사회’라는 주제로 열리는 포럼에 참석하려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기체가 하강하면서 비행기 창문을 통해 한라산 기슭 넓은 들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상의 풍경도 어떤 관심의 계기가 생기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이날 내가 본 제주도의 풍경은 ‘녹색 반 하얀색 반’이었다. 녹색은 숲과 초원이었고 하얀 색은 비닐하우스였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보았던 제주도 들판이 이날은 플라스틱 풍경이었다.

지난 8일과 9일 이틀간 포럼이 열렸다. ‘NGO 시간’에 제주도에서 30여 년간 매일같이 수중탐사활동을 벌여온 김병일 씨(태평양다이빙스쿨 대표)가 제주 바닷속 풍경을 보여줬다. 자료 사진의 절반은 산호초를 비롯한 아름다운 해저 풍경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추한 모습의 쓰레기 더미였다. 해초 사이사이에 얽혀 있는 폐그물, 낚시줄, 밧줄과 모래 바닥에 수북이 쌓인 페트병 등 거의가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폐그물이 물결에 휩쓸리면서 해초가 긁혀나간 자국이 암반 위에 선명이 나 있었다.

문어가 산란한 바위 구멍 입구에 플라스틱 줄이 달린 납봉돌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문어가 산란장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널려 있는 납봉돌을 날라다 쌓는다는 것. 이 봉돌은 낚시꾼들이나 어선에서 버린 낚시추들로 유명한 곳보다는 낚시꾼들만 아는 바닷속에 더 많다는 것이다. 납은 독성을 띤 중금속인데 여기서 잡힌 해산물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간 관광객 1500만명이 방문하는 제주도의 1인 쓰레기 배출량은 전국 평균보다 70% 더 많다. 도심만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호텔과 카페가 즐비하다.

중산간 농장을 덮고 있는 비닐하우스, 해변에 밀려온 다국적 폐기물, 바다밑에 가라앉은 플라스틱 제품들, 수많은 카페가 쏟아내는 1회용컵, 국내 생수 매출 1위 브랜드인 삼다수 페트병 등이 플라스틱 상징성을 지닌 제주도의 모습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환경부 산하 환경공단이 주최하고 제주연구원과 ‘’이 공동으로 기획·주관한 ‘제주플러스 국제환경포럼’은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행사였다. 환경부의 전·현직 공직자들, 플라스틱 관련 학자와 기업인, NGO 대표들, 주한 덴마크 대사가 발표와 토론에 참석했고, 일본과 중국 대표가 비디오 컨퍼런스 형식을 통해 자국의 플라스틱문제와 그 해결과정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았다.

플라스틱은 너무 값싸고 너무 편리해서 인간생활에 깊고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 ‘플라스틱 제로 사회’라는 포럼 주제를 무색하게 만든다. 고래에서 북극곰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폐기물로 시달리는 생태계의 신음은 이제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일본과 중국의 플라스틱 문제를 들었을 때 한·중·일이 어쩌면 ‘플라스틱 폐기물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해안별로 플라스틱 폐기물 라벨에 쓰인 글자를 보며 일본 한국 중국 국적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분류하고 있는 게 특이했다.

포럼에서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 문제의 해답으로 떠오른 담론은 순환경제다.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새 제품을 만들어 내는 재활용 방식이다. 버려진 페트병을 원료로 한 섬유 제품이 소개됐다. 아이너 얀센 주한 덴마크 대사는 레고( LEGO)가 폐페트병을 원료로 레고블록을 만드는데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 주목을 끌었다. 브랜드 지명도가 높은 회사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할 때 산업계에 파급이 클 것임을 예고해 주는 사례다.

2050년 탄소중립이 실현되어 화석연료 사용이 중단되고 바이오플라스틱 시대가 열리면 모를까 석유에서 뽑아낸 플라스틱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플라스틱폐기물 재활용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순환경제 시스템의 틀로 풀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떠오른 ‘도시광산’ 개념을 사례로 제시했다. 도시광산이란 가전제품 등 도시에 집중된 산업폐기물에서 희귀광물을 추출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순환경제의 개념이다. 플라스틱도 도시광산에서 캐내서 활용할 수 있는 원료의 하나라는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재벌기업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나프타 등을 만드는 ‘도시유전’ 사업에 투자를 한다니 이것도 도시광산의 유형일 것이다.

김 전 장관은 플라스틱을 포함한 환경문제는 환경부 책상이 아니라 현장을 모니터할 수 있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이 가능하게 분리하는 소비자 의식이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말은 멋있지만 ‘순환경제’가 정부, 기업,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가능한 지난한 과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어렵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라며 플라스틱 쓰레기처리(순환경제)가 정부의 중요 어젠다가 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폐기물만 아니라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과 나노플라스틱도 이날 전문가들의 발표에서 심각하게 제기된 문제다. 미세플라스틱은 바로 인간의 몸으로 들어올 수 있는 태세를 갖춘 오염원이기 때문이다. 작년 미국 유타대학 연구팀은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 등 자연보호구역 11곳에서 샘플 분석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이 비나 눈과 함께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지역은 LA나 등 태평양 연안 대도시 산업지구에서 1000㎞ 이상 떨어진 청정지역이다.즉 대기가 미세플라스틱의 이동 경로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1회용 플라스틱 생산량이 전 세계적으로 1억3000만 톤에 이르며 그 절반이 미국의 엑손모빌과 다우 그리고 중국의 시노펙(SINOPEC) 등 20개 기업에 의해 생산된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5년간 생산량이 30% 증가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지구온난화를 촉진하고, 폐기물로 버린 플라스틱은 환경을 오염하고 곳곳에서 물의 배수를 막으며 해양동물과 조류를 질식시킨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각하면 유해가스가 배출된다.

플라스틱 오염이 육지와 해양은 물론 대기에까지 퍼지고 있음에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제주도 같은 작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문제이고 아시아의 문제이며 전 지구촌의 문제다.

김수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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