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바베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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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바베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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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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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요새 미국식 바베큐에 취미가 생겨 가끔 앞마당에서 연기를 피우곤 한다. 상상 이상으로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이다. 화덕 안에 고기와 불을 세팅해 놓고 기본 대여섯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인내심이 필요한 요리이지만, 충분한 보상은 있다. 질기고 퍽퍽해 먹기 어렵던 부위가 은은한 열기와 참나무 연기 속에 오래 숙성되면 부드럽고도 육즙 넘치는 고기로 변하곤 하는 것이다. 잘 설계해 놓고 기다리면 퍽퍽한 고기도 맛난 결과물로 바뀌어 나오는 것, 그게 바베큐의 진짜 매력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장동 개발에 대한 뉴스가 한창이다. 불법, 편법을 떠나 일단은 너무나 기가 막힐 ‘대박’이다. 천 배 이상의 수익이 났다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우연찮게 큰돈이 되었을 뿐,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바비큐 선수들의 냄새가 풀풀 난다. 잘 세팅해 놓고 오래오래 기다린, 그런 설계된 사업의 냄새. 기다린 만큼 먹기 좋은 결과물이 나왔음도 분명하다. 바비큐의 장인들이 울고 갈 지경이다.

토지개발로 큰돈을 벌어들이는 설계자(?)들에게 기민한 움직임은 필수이다. 본능적으로 돈 되는 땅의 냄새를 맡고 먼저 움직인다. 일반인들이 소문을 듣고 뒤따라 가 보았자 먹을 것이 남아 있지도 않을 정도다. 그런데 요새 설계자들은 거기에다 ‘인내심’이라는 덕목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개발될만한 토지들은 다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고기로 치자면 부드럽고 맛난 부위는 다 나가고 퍽퍽한 살코기 정도가 남은 셈이랄까. 그래서 요새 설계에는 바비큐와 같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확실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잘 세팅해 놓고 그들은 심지어는 몇 년씩이라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기다릴 수 있다.

대장동이라는 땅이 바로 이렇게 인내심이 필요한 퍽퍽한 고기였다. ‘천당 밑에 분당’이 개발되었을 때에도 이곳은 여전히 산골짜기 보전녹지에 불과했다. 분당과 3킬로나 떨어진 데다 경부고속도로가 사이를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교지구가 개발된다는 소문에 설계자들의 눈빛은 이미 번뜩였을 것이다. 판교는 분당과 대장동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은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터널 하나 정도까지 뚫려준다면 그야말로 화룡정점. 대장동은 결국 분당의 일부가 되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약속한다는 걸 그들은 미리 다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베큐 세팅을 시작했을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은밀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말이다.

설계된 내용을 보면 경탄이 나올 지경이다. 용도변경이나 인허가 과정이야 지자체가 지원군인 마당에 약간의 언론플레이만으로 쉽게 끝났고, 터널 착공도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절묘한 시간에 잘 마무리된다. 최고로 예술적인 설계는 박쥐처럼 민간사업과 공공사업 사이를 오간 부분이다. 민간사업으로 진행하면 분양가상한제를 피해 큰 이윤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거주민들이 땅을 팔지 않는, 소위 ‘알박기’의 위험이 다분하다. 반면 공공사업으로 시행하면 토지를 강제로 사들일 수 있지만, 분양가상한제는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도시개발공사가 이 경험도 없는 시행사의 사업에 들어와 토지수용 단계에서는 공영개발의 면피를 만들어주더니, 시행단계에서는 또 손을 때 민간개발로 바꾸어준다. 토지는 강제 수용하고, 분양가상한제는 피하는, 그야말로 최대 이윤 사업이 이래서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도 설계의 냄새를 맡지 못한 둔한 분들이라면 이 민간시행사의 인력 구성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일개 시행사의 자문, 고문이 대법관급인 것은 물론, 말단 사원도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집안 자제들이다. 어디 대한민국 어벤져스라도 출동한 느낌이다. 누군가 시비를 걸려다가도 명단을 보고는 줄행랑칠 정도이다.

으레 돈은 가져가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치자. 결과물이라도 잘 나와 좋은 주거지가 되면 그나마 좋으련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이 석연찮게 축소되면서 그만큼이 시행사 이윤으로 또 돌아갔다고 한다. 주민센터 같은 공공부지를 지자체가 미리 확보하지 않는 바람에 뒤늦게 시행사에게 원가의 몇 배를 지불했다는데, 이건 또 우연일까. 이래저래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시행사가 푼돈이 들어갈 뿐인 송전탑 지중화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데, 이건 또 무슨 사태인가. 대체 어떤 우주의 기운이 돕고 있길래. 개발과정의 모든 부분들이 일사불란하게도 한 민간시행사의 이익을 이처럼 알뜰하게 챙겨주고 있는 것인지.

제발, 이 모든 것이 우연이고 기가 막힌 천운이었다고 말하지는 말아달라. 차라리 잘 설계하고 오래 참아서 큰 돈 벌게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해달라. 합법, 불법, 편법,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판정난다 해도 사회적 자본을 다시금 1980년대 수준으로 후퇴시킬 스캔들이라는 생각을 피하기는 어렵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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