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여행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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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여행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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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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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음악 노트
전제덕의 <우리 젊은 날>을 듣고
하모니카를 잘 부는 방법

누구에게나 하모니카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 주먹에 쏙 들어가는 이 악기를 자유자재로 부르며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곤 하는. 마도로스였던 내 아버지가 꼭 그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랍에서 하모니카를 찾은 나는 이 악기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방식으로 소리 나는지 한참이나 살피면서 이리저리 불어대곤 했다. 소리가 제대로 날 리가 없었지만 어디에다 입을 대고 불더라도 화음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잘못된 음이라곤 없이 어떤 방식으로건 연주가 되는 신비로운 악기였다. 아버지가 하모니카를 부는 걸 본 적은 없었고, 그럼에도 첫 해외여행 선물로 내가 사온 것은 유명 브랜드의 하모니카였다. 음, 하모니카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음악가로 만들어주는 것 같은 환상이 깃들었다고 해야 할까.

하모니카 이후로 나는 장구, 단소, 리코더를 거쳐서 기타를 만나게 되었고, 음악이라는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문은 내가 연 게 아니라, 그쪽에서 열어주는 쪽이라 해야 할까. 악기를 통해서 음악을 공부해나간다는 건 축복이다. 나는 음악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음악 이야기라면 어느 때고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그러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전제덕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진행자가 어떻게 하면 하모니카를 잘 불 수 있는지 노하우를 물어보았고, 그 질문은 많은 시청자가 궁금한 바로 그것이었다. 전제덕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잘 알면 된다고 다소 심심하게 말했다. 그런데 어느 때고 그 말이 떠오르는 걸 보니, 나는 전제덕에게 완전히 매료된 게 틀림없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아는 것. 하모니카가 들숨과 날숨으로 이뤄져 있기에 이는 소리를 만드는 입김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자에 대한 비유이자, 재즈에 대한 프랙탈적 제유이자,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대한 사유 바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하모니카 연주에는 서사적 전개가 이미지로 환원되는 묘한 순간이 있다. 이게 그의 시각적 장애에 대한 특수한 표출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가진 서정이 음정을 이미지화 시키는 건지도 모른다.

들이쉬었다 내쉬는 숨처럼 우리의 인생이야말로 들어오고 나가는 순간의 연속 아닌가. 세상은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의 총체가 아닌가. 입장이 있으면 퇴장이 있고, 그걸 아는 건 어쩌면 세상의 진리를 아는 게 아닌가. 그런 이유로 나는 그의 연주가 내가 아는 모든 사물과 자연과 사람의 움직임이 담긴 연주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그의 연주를 통해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은 진행 중

그의 콘서트를 찾아가고, 그의 연주를 찾아보고, 끝끝내 그가 하모니카 세상으로 들어오게 된 1집 <우리 젊은 날>을 듣게 되었다. 표지가 인상적인데 새와 바코드, 나뭇잎, 거북의 발과 꼬리, 입체적인 동그라미와 검은 페도라를 쓴 채 하모니카를 입술에 가져다 댄 한 아티스트의 젊은 시절의 얼굴이 표현되어 있다. 이미 완성형이었던 연주에는 어떤 의문도 들지 않았다. 이미 귀에 익은 연주가 많았기에 나는 이 앨범을 어디에서 들으면 좋을지 알고 있었다. 바로 차 안이었다.

그런 앨범이 있지 않은가. 당신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 앨범 말이다. 인트로가 흘러나올 때부터 하모니카 연주는 차창에 반사되어 공명을 만들었다.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 바람이 흘러나오는 듯 했고, 어쩌면 그건 하모니카 연주자의 입김과도 같은 바람이 아닐까 싶었다. 하모니카가 누군가의 호흡이 담긴 따뜻함이라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말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당장 차 안에서, 아니 어디에서건 이어폰을 끼고 이 앨범을 들어보시기를. 전제덕의 어떤 연주라도 좋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들어도 정말 괜찮다. 그의 음악이 다른 세상을 향한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음악을 듣고 있는 그곳은 아니라는 걸 나는 늘 느낀다. 이런 걸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의 묘미는 무엇인가. 다녀온다는 데에 있다. 출발이 있다면 언젠가는 도착이 있을 예정.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니다. 전제덕과의 여행은 진행 중이다.오성은 작가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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