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와 한국 정치
  • 모용복선임기자
중국 축구와 한국 정치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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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모용복 선임기자.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는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은 텔리비전을 통해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경기와 연기를 감상하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료해진 일상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일부 중국인들은 자국에서 벌어지는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할 수 없을 것 같다. 축구경기를 시청하다 홧김에 TV를 박살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중국인 남성이 축구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TV를 망치로 부수고 발로 마구 짓밟는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중국 대표팀이 최약체로 평가받는 베트남에 1-3으로 완패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격분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중국이 베트남에 패한 건 1959년 이후 63년 만에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은 FIFA 랭킹에서 24계단이나 뒤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춘제(중국 설)를 망친 대표팀을 향해 축구 팬들은 “귀국하지 말라”며 악담을 퍼붓는가 하면 “14억 명 중에 11명을 고를 수 없나”라는 한탄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의 월드컵 도전 역사는 초라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본선 무대를 딱 한 번 밟아본 것이 전부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금자탑을 쌓은 우리와 대조된다. 중국이 베트남에 패한 날 한국은 시리아를 상대로 중동 모래바람을 잠재우고 아시아 최초로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중국 축구가 이처럼 바닥을 헤매는 것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추미(球迷·축구광)로 알려진 시진핑 주석은 ‘축구 굴기’를 내세우고 대대적인 축구 육성에 나섰다. 2015년 이후 중국 곳곳에 1000여개 축구학교를 세우고 축구공으로 하는 체조까지 만들었으며, 심지어 소림사에서 쿵후를 연마하는 청소년들에게 축구공으로 훈련을 하게 했다. 메시와 같은 축구스타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대기업들도 엄청난 투자를 통해 프로팀을 후원하고 창단까지 했다. 오죽하면 시 주석이 “내 소원은 중국이 다시 한 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그의 축구몽(夢)은 이번에도 물거품이 됐다.

이처럼 국가와 기업이 대대적으로 지원을 하는데도 중국 축구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국내를 비롯해 일본, 중동, 스페인 등 해외 무대를 두루 경험한 이천수 전 국가대표선수의 지적이 눈길을 끈다. 이천수는 중국 축구의 실패에 대해 “뿌리가 잘못됐다”며 “유소년 축구, 기초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천수는 성과위주의 단기간의 집중투자나 훈련보다 어릴 때부터 축구기술을 자연스레 몸에 익혀야 일류선수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몇 년 전 한 지상파에서 축구강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월드컵 개최를 앞둔 남미의 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이 동네에서 맨발로 축구공을 갖고 놀며 일상으로 축구경기를 즐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우수한 지도자가 없어도 어릴 적부터 형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으며 동시에 축구문화를 몸에 체득한다. 그래서 축구 속에서 자란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축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자재로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축구 굴기’를 부르짖던 중국 축구의 굴욕을 보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우리 대선(大選) 풍경이 오버랩 된다. 비록 축구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업(大業)을 달성했지만 정치에선 낙제점을 면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을 이뤄냈으며,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P) 3만2000달러를 기록하는 등 각종 지표 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하지만 군사독재정부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이념, 계층, 지역 간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되레 확산하는 추세다. 특히 이번 20대 대선에 들어와서는 이 같은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지지율 각축전을 벌이는 유력 여야 대선후보들은 국민통합과 갈등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를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악랄한 의도까지 보인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생각이 다르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사회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해 국민통합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오직 권력을 잡는 데만 혈안이고 국민통합에는 관심이 없다. 신인 때부터 착실하게 정치를 학습하고 경력을 쌓기보다 인기영합적이고 기회주의적이며 일회성의 정치꾼들이 판치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대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치경험이 거의 없는 국회의원 ‘0선’들이 여야 유력 대선주자로 선출된 것은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 때문이지만 그만큼 우리 정치가 올바른 정치인을 길러내는데 소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공천권을 쥔 유력 정치인들이 지역에서 착실하게 실력을 쌓고 기반을 다져온 후보들을 제치고 자기 사람 심기를 위해 ‘낙하산 공천’을 되풀이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연유(緣由)에서 비롯됐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 본령(本領)이라 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학습하지 못한 후보들이 국가 미래를 책임질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정말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또 5년간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사분오열 갈라져 나라 전체가 심각한 갈등 속에 빠져들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바닥을 헤매는 중국축구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를 길러내는 정치풍토 조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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