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토크빌이 미국에서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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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토크빌이 미국에서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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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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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단위로 연재물을 쓰면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는 구독자 숫자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연재물에 따라 구독자 증가 폭이 들쭉날쭉하다. 독자 대중의 성향에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구독자 숫자가 곧바로 광고료로 연결되는 유튜브 운영자는 이보다 몇 배 더 하리라.

나도 몇몇 기자들의 기사를 구독 중이다. 주로 데스크를 지낸 경험이 풍부한 기자들이다. 조선일보 송의달 선임기자의 기사가 구독 리스트에 들어간다. 조선닷컴 1월7일자에 실린 ‘송의달이 만난 사람’에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등장했다. 이 기사의 두 번째 문장에서 나는 그만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덥석 문 물고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50~60년대 당시 한국 문제를 주제로 외국에서 학위를 받던 상당수 유학생들과는 달리, 그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Tocqueville) 연구로 7년 만에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대학 시절 정치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관계로 노재봉 전 총리가 뉴욕대에서 ‘토크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최근에 프랑스 정치사상가 토크빌을 ‘세계인문여행’에 한번 등장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학자, 작가, 저널리스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19세기 프랑스인 토크빌을 소환해 그의 예언적 통찰력에 감탄하며 정치 현실을 개탄하고 있어서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고 있던 차에 노재봉 전 총리 인터뷰 기사에서 뜻밖에도 ‘토크빌’과 조우했다. 아, 이건 이제 토크빌에 대해 한번 쓸 때가 되었다는 계시(啓示)구나.



△ 20년 전 정몽준을 통해 알게 된 토크빌

나는 대학 시절 정치학 관련은 딱 한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이극찬 교수의 정치학 개론이다. 학점은 그런대로 받은 것 같은데, 기이하게도 무엇을 배웠는지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 그때 정치학 개론 시간에 토크빌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토크빌이라는 프랑스 정치사상가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02년 5월 말.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이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2002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주간조선 기자였던 나는 월드컵 관련 기사를 기획하면서 매주 한 편 이상 썼다.

월드컵을 유치한 정몽준 전 의원은 당시 피파(FIFA) 부회장 겸 2002 한일월드컵 조직 위원장으로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나는 정몽준 조직 위원장의 24시를 밀착 취재하는 기사를 기획했다. 첫 일정은 오전 10시 상암동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 있은 어떤 행사. 그날 마지막 일정은 홍은동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있은 심판진 환영 리셉션.

상암동 행사가 끝나자 정 위원장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FIFA 고위층의 공항 영접을 위해서였다.

나는 정 위원장과 함께 자동차 뒷자리에 탔다. 월드컵과 관련한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10여 분이 지나자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순간, 그가 가방을 열더니 논문 복사본을 꺼냈다.

“조 기자, 알렉시스 토크빌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니요, 모르는데요.”

“토크빌은 프랑스 정치사상가인데 19세기 미국을 여행하고 나서 민주주의가 독재로 흐를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어요. 그 당시에 그런 통찰력을 가졌다는 게 놀랍지 않아요?”

그는 내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한번 읽어보라며 토크빌의 논문 복사본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이야기를 각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그는 확실히 보는 눈이 달랐다. 아는 게 없던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토크빌 관련 이야기를 20여 분 이상 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 뒤로 나는 그 소논문을 두세 장 읽다가 그만 포기했다. 책장에 꽂아놓고 언젠가 꼭 읽어야지 차일피일하다가 결국 분실되고 말았다.



△ 다수가 오류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나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이 글에서 나는 democracy를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정(民主政)으로 쓴다. democracy는 사상이 아니다. 사회주의(socialism)나 자본주의(capitalism) 같은 주의(ism)가 될 수 없다.

democracy는 정치체제다. 플루토크러시(Plutocracy)를 금권정(金權政), 아리스토크러시(Aristocracy)를 귀족정(貴族政)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본에서 민주주의라고 잘못 번역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중이다.

민주정은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이 지켜지고, 법치주의가 작동하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면 민주정은 작동된다.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정’에서 democracy가 민주독재로 흐를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평등이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토크빌에 따르면 평등에는 두 종류가 있다. ‘당당하고 정당한 평등’과 ‘저급한 평등’. 전자는 평범한 보통 사람을 위대한 인물의 반열로 끌어올리는 에너지로 작용하지만, 후자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하향 평준화를 정의로운 일로 미화한다.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박힌 민주정에 관한 개념은 두 가지다. 삼권분립과 ‘다수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솥의 세 발(三鼎)처럼 독립적으로 권력을 견제해야 민주정이 작동한다. 다수결이 곧 민주정의 요체가 되려면 다수는 오류가 없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다수가 오류를 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다수에 의한 민주독재다.

토크빌의 생몰년도를 살펴보자. 1805년이면 프랑스대혁명의 혼돈 속에서 나폴레옹 1세가 황제로 등극한 직후다.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반나폴레옹 연합군을 격파한 해다. 유럽 대륙이 나폴레옹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때다.

토크빌은 노르망디 귀족 출신이다. 아버지는 루이 16세의 정부 관료. 태어난 곳은 파리. 혁명 직후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권력을 잡자 그의 아버지는 체포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놓였다.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덕분에 알렉시스가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사망한 1859년을 보자. 이 해는 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된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하고 황제직에 오른 지 8년이 흐른 시점이다. 그 역시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반대했다가 체포되었고 결국 정계를 떠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가 ‘아메리카의 민주정’을 쓰게 되는 과정이다. 프랑스 7월혁명(1830년) 다음 해인 1831년 4월 말 그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으로 미국 형무소제도 연구를 목적으로 친구 귀스타브 보몽과 함께 대서양을 건넌다.

왕정의 구대륙에서 온 스물일곱 정치인은 민주정을 실시하는 신생국 미국 땅을 밟았다. 1831년 5월5일. 그는 1832년 2월까지 9개월간 주로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 정치의 현장을 둘러본다.

프랑스로 돌아온 3년 뒤인 1835년 ‘아메리카의 민주정’ 제1권을 펴낸다.(제2권은 1840년에 나온다) 2022년을 사는 우리는 그가 187년 전, 불과 서른 살에 쓴 책에 밑줄을 그으며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다. 학자와 작가와 저널리스트들은 도저히 그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미국에 머문 기간은 9개월 여. 미국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767~1845)이 재임 중이었다. 2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실렸던 앤드루 잭슨. 당시는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어서 이동이 크게 불편할 때다. 짧은 시간 미국에 머물면서 그는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몬트리올과 퀘백시티도 둘러보기도 했다.

나는 ‘아메리카의 민주정’을 읽고 그의 미국 여행 일정을 들여다보면서 줄곧 조지 오웰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오웰이 사회주의 이상 실현을 위해 참전한 스페인 내전. 정작 오웰이 전쟁에 참전한 기간은 5개월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총알과 포탄이 머리 위로 ‘슝슝슝’ 날아다니는 좌익 진영의 참호 속에서 생각지 못한 진실과 마주했다. 그것은 스탈린과 공산당의 실체였다.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그는 ‘동물 농장’과 ‘1984’을 써내지 못했다. 토크빌은 불과 9개월의 미국 여행에서 민주정이 어떻게 타락해 다수 독재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읽어냈다.

범재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천재는 눈에 보이는 것 저 너머의 세계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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