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변경, 만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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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변경, 만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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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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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서울을 드나드는 경부고속도로 나들목에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 본사 건물 두 개가 언젠가부터 들어섰다. 성문 입구 바로 앞에 회사를 가져다 놓은 셈이라 절묘한 입지가 아닐 수 없다. 건물 자체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만이 바라보는 광고판에 다름없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입지가 그리 정상적으로 결정된 것만은 아닌가 보다. 도시개발 관련 모든 비위에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용도변경’이라는 말이 또 나오고 있다. 대선정국을 휩싸고 도는 여러 의혹 중의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것 같다.

용도변경이 대체 뭐길래 늘 문제가 될까? 도시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도시구조에 대한 일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토지의 영역을 구분하고 영역별로 그에 적합한 색을 입히는 것과 같다. 영역별로 서로 다른 색에 해당하는 기능들이 들어서 서로 조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용도라는 것은 이때 사용되는 색채별 물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용도의 색깔은 몇 개나 될까? 세세한 색채를 다 따지자면 수십 개가 넘는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색깔은 주거, 상업, 공업, 녹지의 4가지이다. 실제 도시계획도에서도 이들은 주어진 색채로 표현된다. 주거는 노랑색, 상업은 빨간색, 공업은 보라색, 녹지는 녹색과 같은 식이다. 이렇게 보면 도시계획은 무슨 색칠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색칠이 가져오는 결과는 엄청나다. 색채별로 허용되는 개발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녹지지역은 그런 점에서 모순적인 용도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가장 풍부해야 할 색채이지만 개발 제한이 많다 보니 토지 가치로는 희박할 수밖에 없다. 주거지역은 주택 개발이 가능한 곳이니, 당연히 지가는 급상승한다. 하지만 다시 여러 개의 등급으로 구분되어 등급 간 차이가 있다. 1종에서는 단독주택 정도만 가능하지만 3종으로 가면 아파트 개발까지 가능한 식이다. 주거지역에도 일부 상업은 허용된다. 하지만 근린상업 정도이고 대규모 판매점이나 유흥시설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용도지역의 정점은 상업지역이다. 주거지역의 3배에 달하는 규모의 건물 개발이 가능하고 업무용 건물은 물론 쇼핑시설, 숙박시설, 유흥시설 등도 완전히 허용된다. 주거가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공동주택, 즉 아파트도 허용되기에 ‘주상복합’아파트 개발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만능의 땅에 가까워 가치도 높다.

이렇게 보면 용도지역들은 일종의 피라미드 구조이다. 아래로 올수록 풍부하고 위로 갈수록 희소하다. 아래가 과소공급되거나 위가 과다공급되는 것은 다 문제가 된다. 그래서 도시계획은 도시를 적절히 균형 잡힌 용도구조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 계획되었다 해도 사후에 이해관계에 따라 용도를 이래저래 변경한다면 이 구조는 균형도 의미도 잃고 만다.

용도가 변경된다 해도 녹지지역이 늘어 나는 경우는 없다. 말이 용도변경이지, 상업이나 주거를 녹지지역으로 바꾸는 식의 변경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지지역을 주거지역, 상업지역을 올리기 위한 시도는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다. 민원을 제기하고 담당자를 매수하기도 하며, 때로 인근의 교육기관, 복지기관 등의 목소리를 빌려 요청하기도 한다. 이미 우리가 뉴스에서 접해 본대로 이다.

물론, 용도변경이 그렇게 쉬울 리는 없다.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시장 이상급만이 권한을 가진다. 지역 위원회나 중앙정부 감사기관의 견제도 없지 않다. 하지만 토지를 차익으로 읽는 세력의 집요함 앞에 이 모든 것들은 무력한 경우가 많다. 결국 용도는 풀리고 건물은 올라가곤 한다. 당연히 지가는 급등하는데, 여기서 나온 이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우리는 상상만 할 뿐이다. 하지만 지선, 대선을 불문하고 아직도 이와 관련된 사고가 수시로 터지는 것을 보면 그 흐름이 제법 썩어 있다는 생각을 피하기는 어렵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용도상향으로 지가가 오르면 지역경제로는 결국 윈-윈게임 아닌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오른 지가는 바로 비용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도심공동화, 난개발, 환경파괴, 탄소증가 등 대부분의 도시문제가 여기서 유발되는 것도 물론이다. 지역마다 진행되는 도시재생 사업을 한번 보라. 사람 적어진 도심에는 공동화를 막는다고 수백억을 붓고 있는데, 외곽에는 녹지를 상향해서 신시가지를 만들고 있다. 이런 모순과 왜곡에서 오는 엄청난 비용을 무시하고 어떻게 지역경제를 논할 수 있을까.

이미 상당수 지방도시들이 과다 용도상향의 부작용을 겪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사는 포항도 그렇다. 인구 1인당 공급된 상업지역 면적이 서울의 3배나 된다. 우물물은 솟아나지도 않는데, 여기저기 저수지만 늘리다가 아예 바닥이 다 드러나는 형국이 될까 우려스럽다. 용도변경을 부동산 활성화 논리로만 다루다간 언젠가 거품이 꺼지는 순간의 충격을 맨몸으로 받아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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