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말들의 풍경’
  • 모용복선임기자
20대 대선 ‘말들의 풍경’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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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대선후보 지역공약 대담녹화
말의 중요성 깨닫는 계기 돼
여야 대선 후보 잇단 말실수
지지율 요동치케 한 요인 돼
安 단일화로 말 뒤집기 논란
오염된 말은 불신사회 조장
국민통합과 화합 달성하려면
정치지도자 말부터 바로서야
모용복 선임기자.
최근 모 라디오방송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20대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지역공약에 대해 격주에 걸쳐 살펴보는 방송대담이었다.

작가로부터 섭외 전화를 받고 한 동안 연락이 없다 녹화 이틀 전 질문지를 받고 부랴부랴 자료준비를 했다. 그동안 발표된 후보들의 공약과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서 단지 이 작업이 피곤한 일만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기자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지역 현안들이며, 또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약을 이행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기사를 써온 덕에 글은 그럭저럭 낙제수준을 면했다는 평판을 받지만 이제껏 경험해 보지 않은 방송에서 말로 하는 일은 영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내조차 내 사투리 억양을 두고 기운을 빼 놓는 통에 성급하게 승낙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퇴근을 해서 정리한 자료들을 훑으며 소리를 내서 읽었다. 나름대로 서울 말씨 흉내를 내가면서. 아내는 그게 더 이상하다면서 평소 하던 대로 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내 사투리 억양이 방송을 타고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화끈거림을 무릅쓰고 두 번의 방송을 다 들었다. 집사람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매주 방송을 하는 줄 알았다”고농을 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송 데뷔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20여 년 동안 기자 일을 하면서 기사만 다뤘지 의사 전달체계로서 언어(言語)의 쌍두마차인 말의 중요성을 잊고 있다 이번에 새삼 깨닫게 됐다.

내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이번 20대 대통령선거도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는지 잘 보여준다. 대선후보의 말실수나 말 바꾸기 논란이 때로는 상대 후보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지율에도 큰 영향을 미쳐 대선판을 요동치게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과거 ‘형수쌍욕’ 논란이 선거운동 내내 발목을 잡아 도덕성에 큰 상채기를 냈다. 또 대선공약에 대한 잦은 말 바꾸기를 비롯해 가장 최근엔 대선TV토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리더십 탓인 듯한 발언을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당내 후보 경선 때부터 잦은 말실수가 구설수에 올랐다. ‘당 해체’ 발언을 비롯해 ‘집이 없어 청약통장이 뭔지 모른다’ ‘극빈한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 ‘전두환 전 대통령 옹호발언’ 등 각종 말실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선 TV토론에서는 일본군의 한반도 진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 후보를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들은 말실수 논란이 별로 없었다. 그 중 국민의당 안철수 전 후보는 과거 선거 때마다 지적돼온 언변 논란을 불식하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열린 수차례 대선TV토론에서 매 토론 때마다 가장 선전을 한 후보로 꼽힌 것만 봐도 ‘제가 MB아바탑니까’라고 하던 과거 안철수가 아니었다. 그런 덕에 한 때 지지율이 15%까지 치솟았다. 그랬던 그가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3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전격 단일화에 합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동안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는 모르지만 단일화는 없다면서 대선 완주를 줄기차기 외쳤던 터라 갑작스런 후보 사퇴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13일 국민의힘에 국민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답변을 얻지 못한 이후로 완주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22일 울산 중앙시장 유세에서 “대통령은 능력이 있어야 하고 최소한 어떤 머리를 빌릴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 1년만 지나고 나면 내가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지금까지 자른 손가락이 10개도 넘어 더 자를 손가락이 없다. 이번에 또 그래서야 되겠나”며 윤 후보를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2일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는 경제와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소양과 지식을 갖춘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날 “저희 두 사람은 원팀이다”며 윤 후보의 손을 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극과 극을 오간 말의 번복에 지탄이 쏟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말의 중요성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며, 일을 성사시킬 수도 망칠 수도 있다. 말은 개인에게는 인격 그 자체이며 사회에 있어서는 신뢰의 바탕이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인해 사람들이 더 이상 소년의 말을 믿지 않는 불신사회가 된 것처럼. 따라서 정치 지도자인 대선후보들이 내뱉는 말은 그 파급력이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온 온갖 거짓말, 말 바꾸기, 말 뒤집기, 번복, 실언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불신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통합과 화합을 이루는 데 있다. 불신을 조장하는 오염된 말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국가와 사회가 바로 서려면 정치 지도자의 말부터 바로 서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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