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을 따지 않는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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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을 따지 않는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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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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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국가가 대륙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호주이다. 우리나라의 80배나 되는 넓은 영토의 끝자락에 있는 북부 해안지역은 적도에 가까워 기후가 온화하다. 이 때문에 일년내내 꽃이 피고 진다. 그 비옥한 땅에 눈독을 들인 유럽인들이 가장 품종이 우수한 꿀벌을 방사했다. 그 당시만 해도 벌꿀은 부유층들만 먹을 수 있었던 고가의 식품이었다. 방사된 벌들은 신이 나 꽃밭을 누비며 꿀을 따 모았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꽃밭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벌들을 볼 수 없었다. 광활한 초원에 무수히 피어 있는 꽃밭 속에 벌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원인을 조사해보니 결과는 이러했다. 벌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연중 내내 꽃이 피어 있었기에 힘들게 꿀을 모아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벌들은 점점 게을러져 벌집 속에서 낮잠만 퍼질러 자고 꽃을 찾아다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호주 북부의 벌은 굴을 따지 않는 ‘쓸모없는 벌’이라고 한다.

사람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나태해지기 시작한다. 나태해지면 곧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나태는 쇠붙이의 녹처럼 심신을 급격히 소모하고 약화시켜 삶의 전반에 걸쳐 가장 해악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태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익숙한 것에 젖어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그렇다고 현재가 만족스럽지도 않다. 지루하고 우울하며 공허하지만 익숙함에서 탈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 상태가 되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바뀌지 않으면 어때. 편하게 이대로 살면 되지.”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다. 모든 사물은 현재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진보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또한 나태는 모든 면에서 상실을 유발한다. 나태한 사람에게 환희는 냉소짓고, 희열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영광은 근처에 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도교, 유교 등을 융합하여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가르침으로 꾸며진 중국의 고서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길만 들이면 부릴 수 있으며, 다루기 힘든 쇠도 잘 다루면 마침내 좋은 기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게을러지면 평생을 두고 아무런 진보가 없다.”

며칠 전, 암세포가 몸속 장기 여러 곳으로 전이되어 생의 마지막을 발치 앞에 둔 사회 친구에게 병문안을 갔다. 뼈만 남은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손을 내밀었다. 온기가 사라진 그의 손을 잡자 창백한 죽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힘내고 용기 잃지 마”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내 눈을 또렷이 응시하며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파리한 안색 탓일까. 눈동자는 더욱 검게 빛났다. “너 기억나! 오래전에 네가 등산 가자고 했을 때 ‘힘들게 산을 왜 올라가냐? 어차피 내려올걸...’이라고 했는데 그때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생각나?” “아니 기억 안 나. 내가 뭐라고 했는데?”라고 되묻자 그는 “네가 내게 이렇게 말했어. 넌 왜 사니? 어차피 죽을 것을.”이라고.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대답을 지금 해줄게. 넌 어떻게 살아야 가장 후회가 적을 것으로 생각하니?”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열심히 살아. 사랑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감사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산 사람이 후회도 없는 거야” 회한과 슬픔에 서린 그 두 눈 속으로 내 감정이 송두리째 이입되었기 때문일까. 익숙한 말이었지만 한마디 말마다 가슴 깊이 알알이 들어박혔다.

지금까지 나는 죽음에 집착했다.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골라 읽으며 삶의 의미를 분석하고 인생이 무엇인지 결론을 유추하려 했다. 그렇지만 끝내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여태껏 한 번도 듣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한 영혼을 후려치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무지렁이 같은 인간이 오만하고 교만했던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핏기없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친구가 해준 말을 곱씹으며 다짐했다. 한순간도 나태하거나 허투루 살지 말자고. 그것이 삶에 대한 절실한 해답일 테니까.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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