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깃발과 태극기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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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악마 깃발과 태극기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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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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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개최 20주년을 기념해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가 연달아 치러졌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국가대표팀은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이집트와 잇따라 경기를 했다.

그때마다 상암월드컵경기장, 대전월드컵경기장,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태극기와 붉은악마 깃발이 함성과 함께 파도쳤다.

어게인(Again) 2002. 붉은악마와 태극기 속에는 2002년 유월 그날의 환희와 환호가 저장돼 있다. 20년 전 6월, 한국인은 한국인이어서 한없이 행복했다. 태극기와 붉은악마 깃발이 거리에 넘실거렸다.

4강 진출이 확정된 날, 늦은 밤 마감을 끝내고 나는 광화문에서 택시를 타고 홍대 앞으로 갔다. 그때 택시 기사의 말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우리 살아생전에 이런 날이 또 올까요?”

붉은악마와 같은 팬클럽이나 결사체는 구성원의 연대감과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징체계가 필요하다. 그 첫 번째가 시각적 이미지인 ‘컬러 아이덴티티’(Color Identity)다.

조직의 목표와 이상을 색깔과 버무려 디자인한 것이 ‘로고’(logo)다.

지난 4월 BTS(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글로벌 연대감과 결속감을 경험했다. ‘보라해거스’(BORAHAEGAS). 도시 전체는 디지털 보라색 깃발로 변신했다.

월드컵은 국기 대항전이다

깃발 중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체계가 ‘국기’(國旗·National flag)다. 국기는 국가의 화신(化身)이다. 월드컵 본선은 다른 말로 하면 국기 대항전이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경기장 안팎은 온통 두 나라의 국기로 출렁거린다.

카타르 월드컵 때 독일 뮌헨의 한 맥줏집에서 독일인들이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때 동양인이 독일 국기를 들고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성(物性)으로 보면, 깃발은 피륙 쪼가리에 불과하다. 일정한 크기로 자른 헝겊에 선을 긋고 색을 칠해 상징을 입힌 게 국기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상징에 환호하고 때때로 절망하기도 한다.

전쟁 상황에서 국기가 주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깃발을 뺏고, 깃발을 꽂고. 병사들은 여기에 목숨을 건다.

널리 알려진 2차 세계대전의 실화. 독일의 패망이 초침처럼 째깍째깍 다가올 때, 독일군은 눈빛으로 알았다. 기왕 항복할 바에야 미군에 항복하는 쪽이 안전하다.

소련군에 포로로 잡히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그들은 미군에 항복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나. 그때 독일군에게 성조기는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1940년 10월, 나치 독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파리를 점령했다. 파리를 손아귀에 넣은 히틀러가 가장 먼저 가고 싶어 한 곳은 에펠탑이었다.

에펠탑에 올라가 파리의 하늘 위에서 나폴레옹처럼 파리를 굽어보고 싶었다.

파리지앵은 꾀를 냈다. 비록 나치에 파리를 내주었지만 히틀러가 에펠탑에 올라가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총통 일행이 왔을 때 에펠탑 엘리베이터 담당 책임자는 고장이 나서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전시 상황이어서 부속품을 구할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히틀러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전시라는데. 대신 “에펠탑 꼭대기에 나치 깃발 하켄크로이츠를 매달라”고 지시하고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병 몇 명이 324m 꼭대기까지 올라가 나치 깃발을 간신히 매달았다.

하지만 하켄크로이츠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몇 시간 만에 깃대가 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유대인에게 하켄크로이츠는 곧 죽음의 사신이었다.

전투에서 승리하거나 목표 지점을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국기를 꼽는 일이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사진은 ‘이오지마(硫黃島) 성조기’다. 1945년 2월16일~3월26일까지 이오지마 상륙전에서 미군 해병대 5000여명이 전사했다.

미군에 맞서 옥쇄 작전을 편 일본군은 1만8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오지마 성조기로 불리는 이 사진은 수리바치(?鉢)산 정상에서 찍힌 것이다. 이 사진이 미국 언론에 실리자 미국인은 2차세계대전의 승리를 확신했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당시 한국군은 중앙청 국기 게양대에 올려진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중앙청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서울 사람들은 3개월간 이어진 죽음의 공포에서 비로소 해방됐다. 중앙청의 휘날리는 태극기에서 자유의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국기는 때때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2006년 가을이었다. 나는 출장으로 캐나다 동부를 갔었다. 그레이븐허스트에서 공식 일정이 끝나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전부 참석하는 만찬만 남겨둔 상태. 3~4시간이 남자 나는 주최 측에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대절해 남쪽 심코(Simcoe)로 내려갔다.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의 펜팔 친구 낸시와 재회하기 위해서였다.

낸시는 딸을 데리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동네 공원을 한 시간 이상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오는 길은 차 편이 없었다. 그때 동네에서 버라이어티 숍을 운영하는 교민이 내 사정을 듣고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노라고 했다. 그의 차를 타고 두 시간 동안 북상하던 중에 어느 길가에서 태극기가 게양된 주유소 겸 잡화점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지나치는 차도 드문 이런 외딴 길에서 태극기를 만나다니.

교민은 태극기를 게양한 주유소 사장의 인생역정을 설명했다. 월남전에 참전했고 캐나다로 이민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만 같았다. 지금도 캐나다 동부 지방도에 펄럭이던 태극기가 눈에 선하다.

한국인이 미디어아트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을 알게 된 것은 1984년이다.

그전까지 한국인은 백남준이라는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이미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건이 2년 전인 1982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벌어졌다.

백남준은 퐁피두센터 1층 전시장에 텔레비전 384대를 깔았다.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제목은 ‘삼색 텔레비전’. 빨강, 하얀, 파랑의 삼색기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파도쳤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프랑스 국기를 창조해낸 것이다.

프랑스 언론은 한국 출신의 예술가가 프랑스 국기를 오브제로 작품을 만든 것에 경탄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국기와 관련 명언을 남겼다. “국가는 이름과 깃발에서 출발해 이름과 깃발 그 자체가 된다.”

괴테의 말처럼 국기가 국가 그 자체가 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 있다.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었을 때다. 지금도 한반도 어딘가에서 국군유해발굴감식단과 미군실종자확인사령부(DPAA)가 활동 중이다.

유해가 발굴되면 감식단은 유해를 흰보자기에 싸서 상자에 넣은 다음 태극기(혹은 성조기)로 나무 상자를 감싼다. 그리고 엄숙한 의식 속에 고향의 유족에게 전달된다.

나라마다 현충일(Memorial Day)이 있다. 현충일 관련 명언들이 많다. 그중에 나를 감동시킨 것은 이것이다.

“국기는 바람이 흔들어 펄럭이는 게 아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숨진 순국선열과 장병들의 마지막 숨결로 펄럭이는 것이다.” 조성관 작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 20주년 기념 평가전’ 대한민국과 이집트의 경기 전반 붉은악마가 ‘우리 다시 함께’ 라는 카드섹션 응원을 펼치고 있다. 2022.6.14/뉴스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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