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앞에서 청렴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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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앞에서 청렴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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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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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는 물조차 씻어서 먹는다’는 이 기막힌 말씀을 초등학교 다닐 때 서원에서 놀다가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어제 들었던 것처럼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물을 어떻게 씻어서 먹느냐고 촐랑이며 되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요놈들’ 하면서 제실 마루에 흙먼지가 앉지 않도록 우리를 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면서 산림처사가 어떻고, 신학문이 어떻고 그때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이후, 40여년이 지나 다시 그 서원에 가보았다.
조선조 청백리 이숭원을 비롯한 5현을 모신 이 서원은 1771년(영조 47년)에 건립되어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재건됐지만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물까지 씻어서 먹어라’고 했던 선현의 가르침은 아직 남아 있는 불초한 촌로들에게 안타까움만 더해 줄 뿐이었다.
다행히도 도동서원은 2018년도에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중수 중이다.
풀숲을 걷어내고 발골작업을 하듯 노쇠한 벽과 구들장을 들어낸 후 비바람을 견디는 인고의 시간을 지나서 단장된 모습으로 마주할 것을 생각하니 그동안 몇몇 유지들의 갖은 노력에 놀라움과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서원은 폐쇄적인 신분제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훗날 그 폐단도 만만치 않아 마침내 역사의 변곡점에서 철폐령이라는 수모도 겪게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사학의 큰 축으로서 인재를 양성하였기에 신분제와는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리로 진출하여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영광 뒤에는 서원이라는 교육적,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이 일조했다고나 할까.
그랬던 서원이 오늘날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서원이 전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지금은 기껏해야 하나의 목조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초한 촌로들이 봄, 가을로 향사를 모시고자 서원을 찾는 데는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어떤 가르침이 몸속에 흐르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노구를 이끌고 해마다 이곳에 올지 모른다.
배향된 주인공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위인이 걸었던 길을 후세들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리저리 머뭇거린다.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사회적 핵심가치가 있다.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치!
청백리에 녹선된 현조처럼 후세들도 당연히 그렇게 행실하여야 한다는 상속된 유산이 그 가치일 수는 없을까.
고래로부터 청렴하기가 매우 어려우니만큼 후대의 본보기로 삼았고, 보다 도덕적이고픈 집안 관리로 훌륭한 조상 덕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속뜻도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선대로부터 서원에 배향된 청백리들의 생활상은 수백년을 거쳐오면서 아직 진행형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청렴의 시작은 있으나, 그 완성도는 아직 진행형이니만큼 공과 사를 항상 경계해야 함을 저 노쇠한 건축물이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서원 앞에서 상념에 잡혀 이리저리 머뭇거린다.
김천경찰서 청문감사인권관 경감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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