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천하’로 끝난 교육백년지대계
  • 모용복선임기자
‘4일 천하’로 끝난 교육백년지대계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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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만5세 하향조정
학제개편안 거센반발에 부딪혀
교육부 나흘 만에 사실상 폐기
경제 논리로만 교육 접근 안돼
 
만취운전·논문표절등 의혹으로
리더십 없는 박순애 교육장관
무리하게 추진하다 사태 키워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이 물 건너갈 전망이다. 학부모·교사들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교육부가 추진 발표 나흘 만에 사실상 폐기할 뜻을 시사한 것이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일 학제개편안 발표 이후 처음으로 학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들이 정말로 이 정책이 아니라고 한다면 폐기될 수 있다고 했다. 또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시도교육청과도 긴밀하게 협의해 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적으로 반발 분위기가 확산하자 뒤늦게 학부모들을 만나 여론수렴을 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반발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이번 논란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는 점에서 교육부의 졸렬한 제도 추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려는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히 좌절됐다. 그런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역대 정권에서 모두 쓴맛을 본 학제개편안 카드를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또다시 꺼내든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없이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인 데에는 취학연령을 낮춰 노동인구를 확보하려는 경제계의 바람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을 경제적인 논리 만으로 접근만 할 수는 없다. 만 5세 아동들이 초등학교에 가는 길 위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우선 학생들의 불이익이다. 만 5세와 6세 아동이 동시에 입학하는 경우 이들이 입시와 취업을 할 때 경쟁률이 올라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공간 확보와 교사 수급도 문제다. 만 5·6세 아동의 동시 입학으로 입학생이 2배 늘어나면 시설 확충과 교원 충원이 불가피하다. 일시적인 학생 수 증가로 인한 천문학적 비용투입을 감안하면 예산낭비가 심각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취학연령 하향은 아동기 놀이를 권장하는 교육방침에도 역행한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 2012년 만 3~5세(우리 나이 5~7세) 공통 교육내용인 누리과정을 도입했다. 누리교육의 핵심은 놀이 중심 교육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은 놀이 중심으로 일과를 편성하며, 아이들에게 충분한 놀이시간을 제공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박순애 장관은 지난달 29일 취학연령 하향 계획 발표 때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 교육투자 효과가 성인기에 비해 16배 더 높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아이들의 놀이를 권장해 놓고 정권이 바뀌자 반대로 빨리 학교에 보내 교육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교육투자 효과도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많은 전문가들은 아동들의 조기교육이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너무 이른 나이에 조기교육을 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설사, 두통, 탈모를 유발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아직 덜 발달한 아동의 뇌에 부담을 주어 정신적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번 학제개편안은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만취운전 이력에다 갑질·논문표절 등 각종 의혹을 받는 박 장관은 국회 원구성 지연으로 청문회 없이 각료(閣僚)로 직행했다. 야당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은 그를 교육수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식이 팽배하다. 새로운 제도를 추진할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학제개편안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다. 자칫 잘못 손을 댔다간 전 국민적인 공분과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교육장관이, 그것도 취임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벌인 일 치고는 일이 너무나 커지고 말았다. ‘스타 장관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도취돼 과속한 결과로 보인다. 다음엔 또 어떤 장관이 무슨 제도를 들고 나와 충격파를 안길 지 우려가 된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수 많은 학부모들을 놀라게 하고 교육 종사자들을 불안에 떨게 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교육백년지대계를 열어갈 적임자인지 의문이 든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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