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가 지나간 후에
  • 모용복선임기자
‘힌남노’가 지나간 후에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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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태풍이 올 때면
어머니 등에 업혀 네개나 되는
개울을 건넌 후에야 등교 가능
지금은 개울에 큰 다리 놓이고
넒은 도로와 흙길 대신 포장길

초강력 태풍 ‘힌남노’ 내습으로
포항 곳곳 침수·농작물 등 피해
지자체·시민 철저한 사전대비로
그나마 피해 줄일 수 있어 다행

태풍으로 좌절한 이들을 업고서
개울을 건너는 용기·인정 필요

집에서 학교까지 5리(里) 길. 개울을 네 개나 건너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여름이나 초가을에 태풍이 오면 뿌연 황톳물이 개울에 놓인 돌다리를 집어삼키고 만다. 요즘 같으면 전화 한 통이면 등교 문제가 해결될 터지만 예전엔 학교 가는 일은 지상 최대 과업이었다. 보기에도 아찔한 황톳물을 헤치고 어머니는 우리 5형제를 차례로 업어 네 개나 되는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하교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정반대로 개울을 건넜다.

어느 해는 돌다리였다가 또 어느 해는 둥근 시멘트로 징검다리가 놓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한 번 태풍 휩쓸고 지나간 후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야 태풍이 농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야속한 존재지만 우리에겐 어쩌면 학교를 빼먹을 수 있게 해주는 반가운 존재였다.

하지만 허리가 휘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은 어머니 덕에 딱 한 번 조퇴인지 결석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6년 정근상(精勤賞)을 안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 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승리가 따로 없다. 나뿐만 아니라 형, 누나, 동네 친구들 모두가 그러했다.

지금 고향마을은 저수지로 변해 물속에 잠겼다. 두 개의 개울은 사라지고 두 개의 개울엔 큰 다리가 놓여 있다. 길도 차가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넓어지고 흙길이 아닌 포장길이다. 태풍과 폭우를 견뎌내며 고향마을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나도 어지간한 충격에는 무너지지 않는 내공을 갖게 되었다. 유년시절 태풍은 그렇게 우리를 단련시키며 속이 단단한 어른으로 만들었다.

그저께 퇴근 후 한바탕 주차전쟁을 치러야 했다. 평소 그 시간대에는 어디에 차를 대야 할지 결정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남아도는 주차공간이다. ‘힌남노’라는 역대급 초강력 태풍이 온다기에 만사를 제쳐놓고 집으로 향한 모양이다. 급하면 집이 그립고 처자식이 보고 싶은 법이다. 그나저나 식당과 술집은 매상이 줄어 울상은 아니었을지, 주차전쟁에서 낙오돼 비바람을 맞으며 지상에 주차를 하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힌남노’는 라오스에서 제출한 태풍 이름으로 ‘돌가시나무 새싹’이란 뜻이다. 라오스 캄무안주 부알라파군에 위치한 국립공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힌남노’라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언론에서조차 ‘한남노’라고 잘못 표기하는 해프닝이 잇따라 발생했다고 한다.

전 국민을 바짝 쫄게 만든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마침내 어제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힌남노’는 우리 포항에도 많은 피해를 입혔다. 강한 바람과 폭우로 시가지 주요 도로와 주택가가 물에 잠기고 주차된 차들이 침수되는 물난리를 겪었다. 또 태풍의 영향으로 환호공원 스카이워크가 부러지고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더욱 울상이다. 가을걷이를 앞둔 들판의 벼들이 강풍과 폭우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지고 과수원의 과실들이 낙과돼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자연재난은 인력(人力)으로 막을 순 없지만 철저한 사전대비와 단합된 힘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는 있다. 어제 새벽 내내 포항시 ‘재난 안전 안내 문자’ 소리가 귓전을 때려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샜다. 이강덕 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침수지역을 찾아 태풍 피해 상황을 살피고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포항시를 비롯해 시민 모두가 철저히 대비하고 힘을 뭉친 덕에 이만큼이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바람이 불수록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미듯 태풍은 물질적인 피해는 입힐지 몰라도 우리를 더욱 단단히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사라진 징검다리 자리에 큰 다리가 놓이듯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처마다 더욱 튼튼한 새 살이 돋을 것이다. 그럴려면 태풍으로 주저앉은 이들을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너는 용기와 인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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