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공공 혐오시설 농촌 뉴딜사업으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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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공공 혐오시설 농촌 뉴딜사업으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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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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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공공 혐오시설 어떻게 해야 하나
이강덕 포항시장
공공시설은 모두를 위한 것
혐오·기피 시설이라는 인식 없앨 것
유치지역 발전에 더 많은 혜택 줘
농촌 고령화와 인구 소멸 대비해
일자리 창출과 농가 수익 늘려

인간의 집단의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집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인간을‘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 규정하면서 결론지어진 말이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라고 하였는데, 로마 제정 시대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가 번역하면서 ‘사회적 동물’로 바꿔 번역한 것이다. 사회적 동물이든, 정치적 동물이든 인간은 집단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집단에 의존하며 끊임없이 상호작용 관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왜 아리스토텔레스와 세네카는 굳이 인간(Human Being)이라는 표현 대신 동물(Animal)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여기에는 인간의 동물성(Animality) 즉, 즉물적(卽物的)이고 본능적인 진화하지 못한 관계 행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집단의식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의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와 관련되어 ‘우리’라는 공동의식에서 시작한다. 집단응집성이 높고 집단규범에의 동일화가 강할수록 집단의식은 높아진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라는 말은 의식 심연에 자리한 가장 원초적인 집단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우리’라는 말은 집단을 경계의 안과 밖으로 나누는 이념적 기준이다. 그래서‘우리’라는 개념은 언제, 어디서나 맨 앞에 존재하고 ‘나’는 그 아래에 묻혀 사라진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집단의식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뚜렷한 인식 차이를 보인다. 이는 소속 집단에 따라 한군데가 선(善)이면 다른 한군데는 반드시 악(惡)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단의식은 언제, 왜 생겨났을까. 아마도 원시인들이 수렵, 채집, 생존 등을 위해 집단을 구성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듀크 대학(Duke University)의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 박사가 이끄는 인류학자 그룹에 따르면, 약 50,000년 전에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수치가 감소하면서 고급 도구와 예술이 개발되었다고 말한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골을 비교하면 유독 구석기 시대의 유골이 눈썹 부위가 두툼하게 튀어나와 있다. 이는 태아기에 테스토스테론이라는 공격성을 유발하는 호르몬이 높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구석기 사람들이 신석기 사람들보다 더 공격적이었는 말이다. 공격성은 생존과 방어 본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구석기 사람들은 주로 혼자서 생존을 감당했고, 신석기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며 서로 의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인간이 본격적으로 집단생활을 시작한 시점은 신석기 시대라 할 수 있다. 집단 속 개인은 사회적이고 관계적이어야 하고 더 친절해져야 일원으로 받아져 외부 세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우리’라는 개념은 이때 탄생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집단의식은 가장 오래된 생존과 방어기제에서 비롯되었다.

집단의 이념은 언제나 정의로운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격과 전이>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집단무의식(Persona)이 적용되지 않는 인간을 ‘원시인’이라고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뜻하는 말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융에 의하면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페르소나의 일종인 가면을 쓰고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과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이 말 또한 얼마나 집단에 의존적인지 반증하고 있다.

인간이 보이는 집단에 대한 관계성은 그 자체로 정치를 의미한다. 정치는 집단을 피해자로 만들어 결속시키고 그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독일 국민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끈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독일 총통을 지냈지만 정작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에 열등감에 빠진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국민 대다수가 가졌던 패배의식을 자극해 오히려 희망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결과 1919년에 조인된 <베르사유 조약>은 화해와 평화에 대한 약속보다는 패전국인 독일에 가혹하고 굴욕스러운 요구를 함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불씨를 남겼다. 영토의 1/8을 프랑스에 내어주고, 무장해제와 육군 10만 명 이상 유지금지를 받았다. 특히 국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배상금을 요구해 내부적으로는 일자리가 줄고 물가가 치솟아 경제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정치적으로는 여러 정당이 한꺼번에 생겨나 내부적 혼란만 부추겼다. 이때 등장한 정치지도자가 바로 히틀러이다. 그는 독일 국민의 우월성을 내세우고 게르만 민족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해 <게르마니아, Germania>라는 책에서 이념적 틀을 마련한다. 이 책은 서기 98년 로마의 역사가이자 웅변가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가 당시 물욕과 환락에 빠진 로마 원로원 의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쓴 책이었다. 책의 분량은 30쪽 정도이지만 여기에는 게르만 민족의 기원과 관습 그리고 민족적 우월성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책 <게르마니아>에 의해 일어났다.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집단을 나락에 빠뜨리게 한다. 그런데 타키투스는 태어나 한 번도 게르만 지역에 거주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종전 후 독일이 동·서로 나뉘고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 사람은 서로 적으로 싸웠던 미국의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이었다. 1963년 6월 베를린 광장에는 케네디의 연설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2천 년 전에는 “나는 로마시민입니다 라는 말이 가장 영광스러운 말이었다면 오늘날 가장 영광스러운 말은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말일 것이다.”이 연설을 들은 독일 국민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미국이 친구이자 보호자를 자청하며 독일의 구원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게 한 이데올로기가 다시 패전국을 같은 이데올로기로 일어서게 한 것이다. 케네디는 이 연설이 있은 지 5개월 뒤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퍼레이드 중에 리 하비 오즈월드에 의해 암살당한다.


인간의 의식과 행위에 필요한 모든 것은 집단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결과물들이다. 구조주의와 기호학의 창시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집단이 인간의 언어 행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내뱉는 말과 행동 어느 하나 온전하게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더욱이 확고하고 명쾌하게 주장하는 말일수록 이미 검증된 남의 말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에서‘관계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공 혐오시설은 농촌 마을의 지속발전 가능성

꼭 필요한 것인데 모두가 하기 싫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집 근처에만 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 바로 공공 혐오시설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이다. 그렇다면 이 꼭 필요한 시설은 누구 집 근처에 설치되어야 하는가. 누구도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매일 두 세끼 정도 음식은 먹어야 산다. 이때 나오는 것이 음식물쓰레기이다. 이뿐만 아니라 먹어서 소화한 만큼 배출 또한 당연한 일이다. 공공 혐오시설이 나쁜 시설이라면 식사와 배출 또한 나쁜 짓이 되는 셈이다. 모두가 매일 함께하는 짓임에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면 우린 집단방관,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인간은 집단에 의존적이다. 모두가 함께하면 책임감이 약해지고 심지어 죄의식도 사라져 결국엔 정의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라고 말해지는 집단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정의롭다’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전국의 대부분 지역이 음식물쓰레기처리장·장사시설·쓰레기소각장·하수처리장 등 공공시설들이 혐오·기피 시설로 인식되면서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가 반대하는 공공 혐오시설을 유치하겠다며 나선 마을이 있다. 포항시에서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추모공원(종합장사시설)·에코빌리지(자원순환종합타운) 등 3개 후보지 공모사업에 일괄 유치 청원서를 여러 지역에서 제출했다. 지역에서 이처럼 빠르게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공공 혐오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실리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은 이미 고령화의 정점에 놓여 있다. 그런 이유에서 곧 겪게 될 농촌소멸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 혐오시설도 기술이 좋아지고 첨단화되면서 악취와 안전성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관리될 수 있어 예전과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시설유치를 통해 얻어지는 효과가 농촌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여러 지역에서 접수한 유치신청에 대해서 “주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삶의 질을 높일 거라 말하면서 이번을 계기로 공공시설이 혐오·기피 시설이 아니라 성장·발전시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특히 “공공시설이 마을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미 홍천군의 사례를 통해 입증된 만큼 포항시도 이에 상응하는 여러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공공 혐오시설 유치정책은 시설 운영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직·간접적으로 배당하거나 시설의 부정적 인식을 상쇄하기 위해 문화·복지 시설을 덤으로 건립해주든 방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공공 혐오시설은 물론 문화시설 등을 마을기업으로 전환해 해당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또 수익을 분배하는 방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는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는 주민들이 앞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 공공 혐오시설의 마을 기업화는 현재 사는 주민은 물론 후대까지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던 젊은 층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공공 혐오시설이 인구 유입, 일자리 창출, 농가의 안정적인 수익 보장까지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일거양득이기 때문이다. 포항시의 공공 혐오시설 입지선정 정책이 마을 기업화로 농촌 인구 유입과 고령화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전국최초의 모범사례로 남길 기대한다. (계속)
 

 

 

김용진

·디자인학 박사

·위덕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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