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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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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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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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매일 지각하는 학생이 있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또 지각한 학생이 수업 도중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선생님은 참지 못하고 회초리를 들었다. 여러 차례 힘주어 종아리를 내리쳤다. 학생은 고개를 떨군 채 어깨만 가늘게 떨었다. 다음 날, 선생님은 사정이 생겨 좀 늦게 출근하던 도중에 우연히 그 학생을 보게 되었다. 병색이 짙어 보이는 아버지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요양시설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학생은 요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학교를 향해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갔다.

선생님은 그 학생의 가정 형편을 조사했다.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학생 단둘뿐이었다. 선생님은 가슴이 미어졌다. 요양시설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죽을힘을 다해 학교로 뛰어왔을 가엾고 착한 학생을…. 날마다 지각하는 이유를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저 불성실하고 불량한 학생이라 여겨 회초리를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여느 날처럼 지각한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교실로 들어오자 학생을 품에 꼭 끌어안고 선생님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프레임(Frame law)의 사전적 의미는 테두리, 창틀, 골격 구조를 뜻한다. 심리학적으로는 ‘생각의 틀’로 사용되는데 좀 더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임 법칙(Frame law)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수평선에 태양이 맞닿아 있는 바다 풍경 그림을 보여주며 느낌을 물으면 우울하고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노을 풍경을 보니 울적하다”라고 말하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사람은 “일출 장면이 웅장하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각과 관점이 다른 이유는 자신의 사고와 고정관념이 이미 틀 지워진 프레임(frame)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관점의 틀인 프레임은 개인의 인생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사회공동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물론 사람이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관점과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현상을 관찰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극단적으로 형성된 이분법적 프레임이다. 이는 심각한 사회분열과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에서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많이 이용한다. 지난 정권에서는 이념적 편 가르기를 넘어 보수세력을 적폐라는 프레임을 씌워 궤멸을 시도했다. 이러한 프레임 정치는 국민에게 그대로 전이되었다. 예전부터 보수와 진보는 서로 대립하긴 했지만, 보수와 진보 간의 불신과 증오가 최고조에 이른 건 아마도 이 시점부터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확증편향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보수와 진보 두 진영 간의 전쟁 중이다. 국가공통의 목표나 가치관, 도덕과 규범은 사라지고 자신만이 선이고 정의라고 외친다.

명확한 진실을 들이대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부합되지 않으면 해괴한 논리로 반박하며 여지없이 버려진다. 자기편이면 무조건 감싸고 상대편은 덮어놓고 물어뜯는다. 상대 진영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정권을 흔들어 쓰러뜨리고 다시 정권을 빼앗아 올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태세다. 이젠 사회정의마저 타락하고 오염되어 사법부의 판결조차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나 Next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생결단을 낼 기세다. 신이 내려와 귓전에 대고 외쳐도 상대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새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고, 수레는 한쪽 바퀴로 구를 수 없다. 한 국가가 제대로 날고, 제대로 굴러가려면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존중하며 국가를 위한, 국민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진보해야 하고, 진보는 보수에 맞서기 위해 부단히 보수해야 한다. 이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토록 철천지 원수처럼 서로 싸우기만 할까. 어느 외국 학자의 말처럼 한국은 진보와 보수가 모두 죽어야 사는 걸까!

지금 전 세계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그 어느 때보다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무한 경쟁에서 패배하는 나라는 도태되고 만다. 엄혹한 이 시기에 지구상 한쪽 귀퉁이에 붙은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같이 타고 있는 진보와 보수는 운명공동체인데 이렇게 물어뜯기만 하다가 결국 자멸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과 절망감이 엄습한다. 언제쯤 이 나라에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보수, 온건하고 합리적인 진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가 올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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