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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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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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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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 반올림이 시작됐다. 바람과 햇살이 밟고 간 발자국마다 거짓말처럼 잎이 생기고 꽃을 가져온다. 매화며 개나리도 가지를 밀어 올리고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며 꽃대를 맺었다. 3월, 개학을 한 초등학교 아이들의 가방이 설렘으로 부풀어 있다. 골목 어디선가 슈만 교향곡 제1번 <봄>이 들려온다. 봄날 모든 것은 저를 반올림하느라 분주하다.

음악에 있어 샵(#)은 반음 올림표이다. 본래의 음 앞에 #을 붙여 단조로운 곡에 변화를 줌으로써 곡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살아가면서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음악은 나를 숨 쉬게 해주는 내 삶의 반올림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뜻하지 않은 화답을 얻은 듯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2년 전 봄, 1학년 샛별이가 피아노 학원으로 왔다. 여덟 살 여자아이였다. 엄마는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아 재활치료 중이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선천적으로 오른팔의 길이가 왼팔보다 오 센티미터가량 짧을 뿐 아니라 손가락도 조금 차이 나게 태어났다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고 밝고 명랑한 귀티 나는 소녀였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꿔가면서 재활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레슨 받다 보니 진도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을 길게 뻗어 옥타브 간격의 음을 연주하면 자세가 오른쪽으로 틀어졌다. 힘들어도 최대한 바른 자세로 앉으라고 조언을 하면 자주 짜증을 냈다. 차츰 결석도 잦고 학교생활의 흥미도, 학원에서의 즐거움도 조금씩 줄어들어 보였다. 그로 인해 환하던 웃음도 차츰차츰 보기가 어려웠다. 한창 싹이 돋고 잎맥을 키워야 할 시기에 병마와 싸워야 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 가슴 한편이 늘 시렸다.

학원 앞 벚나무 가로수는 잎을 떨군 채 겨우내 웅크리고 있더니 어느새 연분홍빛 꽃망울을 맺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내일 당장 죽을 것같이 우울해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봄은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저 푸른 하늘 어디쯤에는 마술 같은 달력 하나가 걸려 있지 않을까 싶다. 신록의 움을 온몸으로 품은 산과 들이 부활을 준비하는 눈부신 계절이다.

해마다 작은 연주회를 가지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행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가을에는 방역 수칙을 지키며 연주회를 진행하였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두 아이는 연탄곡으로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였다. 수시로 힘들어했던 샛별이가 건반에 손을 올리자 손가락이 날개 단 듯 춤을 추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인형>이라는 곡을 독주하였다. 두 곡의 연주를 끝낸 샛별이 얼굴은 활짝 핀 봄꽃 같았다.

샛별이와 같이 연주한 아이는 건강하고 공부도 곧잘 하였으나 유독 악보를 암보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데도 최선을 다하는 친구를 보면서 자기도 열심히 해야지 하고 다짐했다고 한다. 둘은 수업 시간 외에도 서로 호흡을 맞추고 화음을 맞춰가더니 연습 시간이 쌓이자 아름다운 선율을 피워 올렸다. 그 결과 멋진 피날레를 꾸몄다. 노력의 대가였다. 샛별이로 인해 전체 원아들이 더 열심히 연습하게 된 연주회는 다른 해보다 큰 감동이었다. 한참 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던 샛별이에게 어떤 힘든 일이든 노력하고 이겨내면 꼭 이루어진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저마다 가슴속에 새싹의 움 하나를 피워 올리는 연두의 계절이다. 땅 위에 서면 대지의 맥박이 들려오고, 꽃잎이 열리는 귓속말도 전해올 것 같다. 잠자던 씨앗이 일어나는 모습은 신비하고 경이롭다. 생명의 옷을 갈아입는 자연의 품에서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되고 싶은 ! 가 그려지는 봄이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역동적인 힘도 생긴다.

봄날의 반올림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긴 머리를 자르고 귀가 살짝 보이는 것도 반올림이며, 겨울의 처진 마음을 다듬는 것 또한 반올림이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나무의 허리에 둘러맸던 짚을 푸는 것도, 내일을 꿈꾸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것 또한 반올림이리라.

봄이 왔다. 학교 앞,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골목이 들썩들썩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샛별이가 선생님~~ 하면서 달려와 와락 안긴다. 가로수 벚나무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 다리를 길게 뻗어 가지를 박차고 힘차게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날갯짓이 푸르다.

훅! 봄바람 한줄기, 내 마음에 #하나를 그려준다. 가슴 벅찬 봄. 봄.

오은주 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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