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늘리면 안 되고 병상은 자유롭게 늘리는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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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늘리면 안 되고 병상은 자유롭게 늘리는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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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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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료제도가 가뜩이나 의사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더 부족하게 만들고 있다. 새로 병원을 짓거나 병원이 병상을 늘리는 것을 거의 규제하지 않는 의료제도가 그 중 하나이다.

병원과 병상을 늘리는 것을 규제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에 비해 병상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인구 당 병상 수는 OECD 국가에 비해 3배 가까이 많다. 병상 수에 비례해서 입원 환자, 수술 환자가 늘어나니 당연히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병상은 자유롭게 늘어나도록 방치하면서 의사는 늘리지 않는 이상하고도 나쁜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당 의사 수는 OECD 국가의 3분의 2수준이지만(2019년 기준), 병상 당 의사 수는 OECD 국가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OECD 국가에 비해 의사 1명이 4배 더 많은 입원 환자와 수술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3배 가까이 많은 병상을 채우려니 당연히 입원하지 않아도 될 환자와 수술하지 않아도 될 환자를 수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굳이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를 입원시켜 놓고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그러니 병원에 입원해서 의사를 만나기도 제대로 설명을 듣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상 당 의사 수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 수가 늘고 있지만 병상 수가 그보다 더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9~2019년 사이에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1.9명에서 2.5명으로 늘었으나, 10병상 당 의사 수는 2.3명에서 2.0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OECD 국가 인구 당 의사 수 격차는 1.6배에서 1.4배로 줄었지만, 병상 당 의사 수 격차는 2.8배에서 4.1배로 오히려 늘었다.

병원과 병상을 늘리면 입원 환자가 늘고, 환자가 늘면 환자를 돌볼 의사를 늘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는 못 늘리면서 병원과 병상은 자유롭게 늘려도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환자를 많이 입원시킬수록, 환자에게 검사와 처치 같은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행위별수가제 방식으로 병원과 의사에게 진료비를 준다.

행위별수가제 하에는 의원을 병원으로 키우고, 작은 병원을 큰 병원으로 키우면 진료비 수입이 늘어난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유롭게 병원을 세우고 병상을 늘리는 제도를 선호한다. 2000년 이후 병상 공급을 규제해야 한다는 제안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의사들의 반대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다. 2019년 의료법 개정으로 병상이 과잉 공급된 지역에서 추가로 병상이 늘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보건복지부는 의사들 눈치를 보느라 4년 동안 시행령, 시행규칙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병원과 병상은 자유롭게 늘리면서 의사는 늘리지 못하는 이상한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환자 입장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의료제도이지만 의사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한 의료제도였다. 이런 이상한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가 의사들에게 포획된 결과물이다.

의사에게 유리한 것처럼만 보였던 이 같은 의료제도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다. 이른바 빅5라고 불리는 유명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에 모두 6000병상 규모로 10개 분원을 지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2026~2028년 사이에 대부분 문을 열 이들 병원은 전국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이들 분원을 운영하는데 의사 3000명, 간호사 6000~8000명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해서 간신히 운영되고 있는 지방 의료체계는 이들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에 인력을 빼앗기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분원이 세워진 지역 주민들은 서울로 가지 않아도 좋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들 유명 대학병원 분원에 환자를 빼앗긴 그 지역 중소병원들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굳이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를 입원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의료행위가 의료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학적으로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 없는 환자를 입원시키거나 수술을 받도록 하는 것은 질 나쁜 의료이다.

병원과 병상은 자유롭게 늘리면서 의사는 늘리지 못하는 이상한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이제 더 이상 병원과 의사에게도 유리하기만 한 제도가 아니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좋은 새로운 제도로 탈바꿈할 때가 왔다.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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