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환자 ‘응급실 뺑뺑이’ 빙산의 일각…불법 관행 근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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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환자 ‘응급실 뺑뺑이’ 빙산의 일각…불법 관행 근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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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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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응급환자 A양의 진료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한 대구 지역 4개 대형병원에 대해 병원당 평균 1억 남짓한 지원금 중단 및 과징금 부과 조처가 내려졌다. 이들 병원의 진료 수입이 연평균 4000억원 규모이니 응급환자 진료 거부로 0.025%의 재정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 지원금은 나중에 받으면 되니 실제 병원당 손실은 진료수입의 0.003% 수준인 1000만원 남짓한 과징금뿐이다. 정부가 “6개월 뒤 타당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권역 응급기관센터 지정 취소 등 행정처분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실제로 그런 조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병원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응급의료법은 병원이 신속한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인지 먼저 평가한 후 위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 파티마 병원은 환자를 진찰하지도 않고 정신과 진료가 안 된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 자살을 시도한 것 같다는 이유였다. A양 어머니가 정신과 진료는 나중에 받아도 되니 우선 응급진료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경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외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같은 병원 권역외상센터로 가라고만 하고 환자를 인계해 주지 않았다. 이곳 권역외상센터는 병상이 비어 있었고 진료 환자 대부분이 경증 환자였지만 거부했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인지도 알 수 없는데 다른 환자를 수술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구가톨릭병원도 환자에게 어떤 진료가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경외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응급의료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다른 병원에 가는 게 환자에게 더 좋을 경우만 인정된다. 하지만 지역 4개 병원 모두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했다. 병상이 비어있어도,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대부분이어도, 어떤 환자인지 보지도 않고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또는 수술 중이라는 핑계로 거부했다.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문제다. 2017년~2021년 A양처럼 병원 진료 거부로 거리를 떠돌다 심정지, 호흡정지 상태에 이른 환자가 3800여명에 달한다.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중증 응급환자 11명 중 1명, 하루 약 100명 가까운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된다. 전원율이 조금씩 개선됐으나 여전히 미국보다 3배 더 높다.

병원이 중증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해 사망하는 사건이 되풀이됐다는 게 더욱 참담하다. 2010년 대구에서 장중첩증 4세 소아가 4시간 넘게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했고, 2016년 전주에서 견인차에 치인 2살 아이를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수술을 거부당해 사망했고, 2017년 장난감을 삼킨 2세 소아를 근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해 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

이때마다 정부는 병원에 과징금을 매기고 응급의료기관 지정 취소 등의 조치를 반복했지만, 병원의 진료 거부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흘러간 유행가 가락처럼 효과 없는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의사들 원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미국처럼 응급실 진료비가 비싸지 않아 응급환자가 너무 많고 대부분 큰 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다. 환자를 줄여줘야 중증 응급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다 등등.’ 팩트 체크가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나라 응급환자 수는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해 의사 당 응급환자 수는 3배 가까이 많다. 우리나라 응급실이 붐비는 이유는 응급환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비해 경증 환자가 많다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응급환자 입원율은 23%로 미국의 13%에 비해 더 높다.

병상이 부족하고 수술할 의사가 없어 응급환자 진료가 어렵다는 말도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전체 입원환자 중 응급실을 통해 병실에 입원하는 환자는 14%, 중환자실 입원환자는 18%, 응급수술 환자는 전체 수술 환자의 2%에 불과하다. 매일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거나 수술하는 환자 수도 일정하다.

병원이 중증 응급환자를 먼저 입원시키고, 먼저 수술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환자가 진료 거부를 당해 억울하게 죽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수가가 낮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내부 자료에 의하면 응급수술 수가를 제외한 응급의료수가가 낮지 않다고 말한다.

병원의 불법적인 응급환자 진료 거부라는 나쁜 관행을 끊어내려면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하면 큰 손해를 보도록 해야 한다. 대학병원에 중요한 상급종합병원 지정과 7000억원 규모의 진료비 가산제도인 의료 질 평가지원금을 연계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응급환자가 넘쳐나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환자를 보내지 말라고 미리 선언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조건 환자를 받아서 우선 살려놓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응급환자가 진료 거부를 당해 거리를 떠돌다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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