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영어의 사회
  • 모용복국장
죽은 영어의 사회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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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고교 영어교사
학생들의 졸업 시험지 불태워
현행 교육문제 공론화가 목적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넘사벽’
10여 년을 공부해도 무용지물
대다수 아이들이 어려움 토로
아이들 입시 지옥으로 몰아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는 2014년 유명(幽明)을 달리한 유명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성장영화다.

새로 부임한 영어교사 존 키팅은 엄격하기로 유명한 웰튼 고등학교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동아리를 만든 뒤, 입시에 찌든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유를 만끽하라고 가르친다. 그는 교과서에서 시를 평가하는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자 찢어버리라고 하거나 아이들에게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 정신을 강조한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학생인 닐 페리는 연극배우가 꿈이다. 어느 날 몰래 연극공연을 한 일이 아버지에게 들켜 강제전학을 강요받자 머리에 권총을 쏴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일로 키팅은 교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학생들은 떠나는 키팅을 향한 마지막 인사로서 책상 위에 올라가 월트 휘트먼의 시의 한 구절이자 평소 제자들이 부르던 키팅의 별명인 ‘오 캡틴 마이 캡틴(O Captain! My Captain!)을 외친다.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졌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고등학교 영어교사가 교육제도에 불만을 품고 학생들의 졸업 시험지를 불태웠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파리 17구에 있는 직업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계약직 교사 빅토르 임모르디노는 지난 9일 학교 앞에서 63장의 바칼로레아 시험지를 불태워 버렸다. 그는 이 일로 정직처분을 받고 올해 10월 27일에 있을 재판까지 학교에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시험지를 불태운 이유는 현행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공론화 할 수 있도록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제출한 시험지를 봤는데 재앙과 같았다”며 “내가 일하는 학교 앞에서 내 학생들의 시험지를 불태움으로써 우리가 그간 해온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시급한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7년을 배우고 졸업해도 학생들은 영어를 하지 못한다”며 “이건 학급 전체에 해당하는데, 만약 모두가 그렇다면 학생들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라틴어 계통인 프랑스어(佛語)와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영어는 어휘의 40% 가량이 일치한다. 이런데도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비(非)라틴어에 속한 국민들에게 있어 영어란 ‘넘사벽’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기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국어와 영어의 언어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어에는 조사가 있는 반면에 영어에는 조사가 없다. 그로 인해 한국어는 단어 배열의 순서를 바꿔도 말이 되지만 영어는 조사가 없어 문장의 순서를 바꾸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어 버리거나 심지어 비문이 되기까지 한다.

환경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보통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교실에서 문법과 어휘를 배운다. 하지만 영어 스피킹은 실제 상황에서 말을 많이 해야 향상되므로 이러한 환경이 부족한 한국인으로서는 영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처럼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주위에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생에 혹시 미국인이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일반인들과 달리 특별한 뇌 구조를 지닌 성 싶다. 이런 난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 범생(凡生)들은 10여 년 동안 사용하지도 못할 영어 문법과 단어를 죽어라 외우면서 어른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다.

요즘은 요람에서부터 영어교육을 할 만큼 교육열이 높고 각종 사교육에다 원어민 교사에게서 회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 예전보다 영어를 잘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대다수 아이들은 여전히 영어공부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7년을 배워도 영어를 못한다’는 프랑스 영어교사의 말대로 아직도 우리는 ‘죽은 영어의 사회’에서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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