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와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 모용복국장
조선통신사와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0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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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 전 조선통신사 일행
1년간 倭 동향 살피고 돌아와
잘못된 보고로 전쟁 참화 초래

후쿠시마 오염수시찰단 日방문
5박6일간의 현장 점검 마무리
오늘 내놓을 결과물 관심 집중

정치적 이해 따라 좌고우면 해
자손만대에 禍根 남겨선 안 돼
잘못된 역사 전철 밟지 않아야

1590년 3월, 조선통신사 정사에 임명된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수행원 200여명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향했다.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각처에서 활약하던 무사들을 정리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뤘다는 소식이 들리자 정세를 파악하려 통신사를 파견했다. 이들은 1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왜(倭)의 동향을 살핀 뒤 이듬해 귀국해 선조에게 서로 다른 보고를 했다.

서인에 속한 황윤길은 반드시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므로 방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한 반면, 동인에 속한 김성일은 도요토미의 인물됨이 보잘 것 없고 군사준비가 돼 있음을 보지 못했다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동인세력이 강성하였으므로 선조는 김성일의 말을 좇아 방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결국 다음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나자 전쟁에 대비가 없었던 조선은 참화를 피할 수 없었다. 선조가 황윤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로부터 433년 후,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후쿠시마 오염수 점검을 위한 전문가 시찰단이 지난 21일 5박6일 일정으로 일본에 들어갔다. 시찰단은 유 단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25일까지 후쿠시마 오염수 현장점검을 실시한 후 26일 귀국할 예정이다.

시찰단은 먼저 오염수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치기 전 단계에서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용해야 하는 긴급차단밸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집중적으로 살폈다. 또 오염수를 희석하고 방류하는 설비, 핵종별 전처리 과정 절차, 핵종별 농도 분석에 이용하는 장비 등도 확인했다. 일본의 안전 주장의 핵심인 ‘희석 및 방출설비’에 관련해서는 해수 이송펌프, 유량계, 상하류 수조 등이 설계 도면대로 설치되어 있는지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희석 및 방출을 통해 방사선 기준치 이하로 낮추면 해양 방류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26일) 귀국하는 시찰단이 내놓을 결과물에 전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내용물이 무엇인지, 또 과연 본 사실 그대로를 전달할 지 주목된다. 당초 일각의 우려대로 일본이 내놓은 자료만 검토하고 제대로 된 검증은 하지 못한 채 들러리만 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지난 24일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소재 도쿄전력 폐로자료관 앞에 선 유 단장은 “2021년 8월부터 오염수 방류 계획을 검토해 오면서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시찰 항목으로 잡았고, 보고자 했던 설비들은 다 봤다”고 말했다. 다만 “기능과 역할에 대한 여러 가지 추가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한 결론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이러한 유 단장의 발언에서 시찰단이 내놓을 내용물의 일단(一端)이 보인다. 혹시나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귀찮은 비난을 피하지나 않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 여(與)와 야(野)가 맹목적으로 대립하고 있어 어떤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소위 과학자를 자처하는 전문가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좌고우면(左顧右眄) 해 보고 느낀 바를 직언하지 않으면 자손만대에까지 화근(禍根)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는 우리 국민 건강과 생명, 나아가 국가 존립과도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권력이나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물론 시찰단이 오염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결과물을 낸다고 해서, 또 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고 해서 순순히 들을 일본은 아니다. 그러나 알고서 방비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는 400여 년 만에 되풀이되는 역사 앞에 또다시 섰다. 지금 붕당정치보다 더한 이념대립으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둘로 쪼개졌다. 일본 원전 오염수 빙류를 두고도 괜찮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이 팽팽히 맞선다. 객관적인 근거에 바탕을 하기보다 정치적 이해와 감정에 휩쓸린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은 400여 년 전 전철을 또다시 밟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잘못된 역사의 악순환을 이제 끊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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