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영현
눈을 뜨면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뿐인데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고 박쥐는 새가 아니고
아니지만 이름을 벗을 수 없고 바다를 떠날 수 없고 날개를 버릴 수 없다
온몸이 피로로 꽉 차면 딸깍
스위치를 내리듯 눈을 감는다
누가 내 잠에 죽음을 탄 걸까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깊이 가라앉는다
잠은 낱개 포장된 죽음
낱개의 죽음을 다 써 버리면
죽음의 원액을 마셔야 할까
버둥버둥 버둥거린다 언제 내 다리에 비늘이 돋았나 마른 바닥 물고기가 되어 물 좀 주세요 물 좀 주세요 물 한 컵이면 붕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데
되돌아간다 돌아가서
다시 낯선 이름으로 꿈을 꾸고
어쩌면 나는 잠이 피워낸 풀 한 포기
내 뿌리는 언제나 잠을 움켜쥐고 있다
2021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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