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혜향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퇴근길 지하철 4번 출입구에 눈사람이 서 있었다
등 뒤로 폭설이 쌓이고 눈만 내놓은 채
내가 다가서자 눈사람이 움직였다
오늘따라 구두 신은 발을 측은해하며 이끌어주었다
길은 보이지 않았다
단단히 뭉쳐진 손을 잡고 따라가면 되었다
한겨울에도 손이 따듯한 눈사람은 추위에 강한 줄 알았다
그런 줄만 알았다 금이 간 손가락도 아무렇지 않게 나았다
일자로 다문 입은 아프다는 말이 없었다
지붕의 눈이 좀체 녹지 않았던 좁은 평수의 신혼은
뒹굴면 금방 따듯해졌다
견디라는 신의 뜻인지 세상의 바람은 우리 집으로 들어와
몇 센티만 열어놓아도 몸이 굳는다
하루 종일 바깥 추위를 견딘 눈사람을
온돌침대에 녹이고 싶을 때가 있는데
누우면 금세 눈은 녹아 이불 밑이 축축해지고
밤새 사람만 남아 코를 곤다
아침이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바깥으로 걸어가는 눈사람
2022 월간 모던포엠 신인문학상 수상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전국마로니에백일장
동서문학상, 호미문학상 수상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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