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할 때 요리사에게 엄했던 셰프도 설거지하는 직원에게는 유독 실수에 관대한 경우가 많았다. 그날 처음 온 직원이 옮기던 그릇을 놓쳐 모두 깨진 적이 있었지만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갔다.
설거지 일은 그만큼 고된 경우가 많다. 주방 라인이 크고 길었던 곳에서 일하는 요리사들 사이로 그릇과 프라이팬을 옮기곤 했다. 마치 전쟁 중인 참호들을 오가며 탄약을 운반하는 것은 아닌가 상상할 정도였다.
주문이 몰려올 때 접시가 부족하면 손님에게 나갈 음식을 전달할 수가 없다. 팬에 눌어붙은 쌀알, 고기 등을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하고 그릇 중 모자란 것을 먼저 닦아야 한다.
식기세척기는 1분에 한 번씩 새로운 그릇을 내놓으니, 한시도 세척기가 노는 시간이 없도록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반복을 점심시간 3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는 체력도 필요하다.
사람의 부재와 달리 더 큰 문제는 식기세척기가 고장이 난 경우이다. 이때엔 모든 세척 일의 속도가 느려진다. 더러운 그릇이 쌓이는 대로 정리해 놓기도 어렵다. 그동안 식기세척기는 사실 두 사람 몫 이상의 업무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척기는 기계에 따라 40리터 정도의 물을 탱크에 넣고 일을 시작한다. 이 물로 수백그릇의 접시를 파손 없이 세척한다. 만약 사람이 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물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런 효율이 가능한 이유는 계속 뜨거운 물을 만들면서 고압으로 뿜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에서 하듯이 거품을 묻혀 닦고 흐르는 물에 닦는다면 그릇 몇장에도 손쉽게 2, 3리터의 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 시간도 최소 5분은 걸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식기세척기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알게 된다.
이런 식기세척기는 한 여성 발명가로부터 시작되었다. 1887년 미국의 조세핀 코크런은 자신의 집에서 설거지로 자주 접시에 이가 나가는 일이 생기는 것을 보고 기계 세척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발명가는 각고의 노력으로 특허를 신청했고 자신이 만든 설계도에 맞게 시제품을 만들었다. 당시의 설계도를 보면 하단에 물탱크가 있고 상단에 고압으로 물을 뿌려주는 등 현재의 식기세척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녀의 사후에 그녀의 세척기 회사는 다른 주방기기 회사에 인수되었다. 이 엄청난 발명은 호텔, 레스토랑에 도입되면서 생산성을 크게 늘렸다. 물절약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식기세척기는 코로나 시기 모임을 가정에서 하면서 많이 증가하기도 했다. 뜨거운 고압 세척으로 위생과 소독에 민감한 사람들의 지갑을 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설거지를 식기세척기로 대신하면 가사 노동 시간 중 7, 10분 정도를 줄여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가정용 식기세척기 시장도 커지고 있다. 특히 남녀 모두 일을 하는 신혼부부 사이에서 이 아이템은 선택에서 필수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여 식사할 경우에 항상 남은 설거지 일을 누군가는 맡아야 한다. 이 일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식기세척기가 가정에 작은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식기세척기는 전용세제와 린스도 필요하고 사용에 따른 관리 비용이 들어간다. 내게 필요한지 아닌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또한 열에 약한 그릇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매일 하는 설거지는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생존과 직결된 노동이기도 하다. 설거지를 통해 우리는 깨끗한 그릇을 얻는다. 수백 명이 사용했던 접시도 새것처럼 만들어준다. 이는 결국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는 것과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일회용 그릇을 사용하던 야구장에선 공유설거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단일세척기의 효율을 넘어 공장 단위로 확대하여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린 서비스이다.
이렇게 설거지의 효율이 극대화되면 1회용품의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저렴한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보고 배워온 설거지는 점점 주변에서 사라지고 설거지 서비스로 전환되지 않을까.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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