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칭 국보 제1호 무애 양주동박사는 제자들이 결혼 주례사를 부탁하러 집을 찾아가면 아래층의 사모님께 주례 사례금의 수납 절차부터 밟으라고 타 이른다. 그리고 천하의 미당 서정주도 부탁받은 회갑 축시를 써 준 다음에 그 때를 회상하며 쓴 시가 전한다.
한 수(首)에 오만 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자집 마누라
/ 새삼 그리워라 /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이것도 무항산이면 무항심의 한 단면이다.
서한의 문장가 양웅은 가난을 쫓아 보낸다는 ‘축빈부(逐貧賦)’를 지었다. “너를 버리고자 곤륜산 꼭대기에 올라가도 따라오고 … 동굴에 몸을 숨겨도 쫓아오니 …” 하고 원망하니 가난은 이 말을 턱 받아 “나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참고, 궁핍을 견디며 가난으로 쌓은 큰 덕을 잊어버리고, 나에게 작은 원망을 늘어놓으니 …” 라며 반박했다. 이 말에 깊은 메아리가 퍼지고 음미해 볼 여지를 남긴다. 궁할수록 가난의 즐거움이 더욱 굳어진다는 ‘궁당익견’의 깊은 뜻을 놓친 것이다. 물욕을 억제하고 청빈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행자의 외로운 구도와, 가난을 즐긴다는 ‘안빈낙도’의 지음(知音)이 합해지니, 청정(淸淨)의 훈기가 스며들고, 타고 난 순박한 바탕의 성품이 드러난다.
#김세겸(통신사 부사, 1636년 제4회)의 ‘해사록’에는 사절들이 에도(江戶)에서 장군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은자(은돈)는 뇌물성으로 부정한 돈이라 생각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신들이 쓰고 남은 물건을 황금 1천 수 백량으로 바꾸어 같이 도도미의 아라이(荒天) 근처에 있는 하천에 던져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훗날 일본 사람들에 의해 이 하천을 ‘금절하투금(金絶河投金 · 금과 돈을 하천에 버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관리들이 돈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철저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유한(통신사 제술관, 1719년 제9회)의 ’해유록‘에 사행 임무를 마치고 귀국행장(行裝)에 왜인들의 선물이 많았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행정(行程)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여섯 배의 격졸(하급 수행원)들에게 모든 물품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돈의 효용가치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는데, 역기능에 말려드면 사회활동 및 일신상에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항상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에 초연함을 견지해야 한다.
#명나라 육수성(陸樹聲)의 ‘청서필담(淸暑筆談)’에 부(富)는 원망의 곳집이요. 귀(貴)는 위태로움의 기틀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부귀는 다른 사람의 원망과 한숨에서 나왔다. 발밑에는 항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적었다.
이는 호사다마라 항상 좋은 일에는 흔히 마가 생긴다는 뜻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알라는 명구절이다. 그러므로 선비는 모름지기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 일정거리 이재(理財)를 제척(除斥)해야 하고, 선비가 돈 맛을 맡게 되면 학문이 좌절되고, 배부른 학자에게 불후역저(不朽力著)는 가망 없다. 그리고 관리가 돈 맛을 알게 되면 나라가 거덜 난다는 것은 천하 공지의 사실이 아니던가. 이 모두가 사회악의 효모가 돈에서 발효되어 번식되고 전파된다.
소동파는 “가난한 사람의 시(詩)가 좋은 법”이라고 했다. 배고픔은 글 쓰는 이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성호 이익의 금언(金言)에 “선비가 힘쓸 것은 여섯 가지 참는 데 있다고 했다. 1.주림을 참아야 하고 2.추위를 참아야 하며 3.수고로움을 참아야 하고 4.곤궁함을 참아야 하며 5.노여움을 참아야 하고 6.부러움을 참아야 한다. 참아서 그것을 편안히 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 위에 열거한 청빈에 대해 혹자는 “제 집 새는 비도 못 막는 주변머리로, 무슨 나랏일을 돌보냐”하는 조롱도 받았을 터다. 그러나 선비는 가야만 하는 청빈의 길이기에 딴 도리가 없음에 어찌하랴.
#일본의 경우 막부 치하의 번주가 꾸미지 않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니면 쇼군을 욕보이는 행동으로 간주하고 처벌하였다. 사무라이의 입성이 초라하면 주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로 여긴다. 일국의 재상이 낡은 옷을 입고, 비 새는 집에서 사는 것만 미덕으로 여기면 나라의 체면은 뭐가 되는가 하고 엄중히 처벌하였다.
일본의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1611~72)는 아이즈(會津)의 번주로 한 때 도쿠가와 이에쓰나(제4대 장군)의 정치 보좌역, 농노해방, 상평창(常平倉) 설치 등을 했으며 그가 평소 하는 말에 나에게는 즐거움이 둘 있다. 그 하나는 “집안이 가난하여 사치라고는 모르는 하늘이 내린 가난의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호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신불(神佛)의 은총을 받은 천운의 즐거움이다”는 기인(奇人)적 발상이나 진정에서 빚어진 일이라 생각된다. 그는 일본의 3현인(賢人)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이 세상 모든 물질은 ‘질량 불변의 법칙’에 의해 세계인의 풍요로운 물자 제공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 빈곤은 불가피한 숙명이다. 이 때 빈곤을 도락으로 승화시켜 즐기는 선견자의 사고와 화폐를 물신으로 신내림 받은 속물들의 인생관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로 명암이 갈린다.
#사람의 한 평생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으며, 모든게 부족하고 곤궁하여, 참고 견디는 심중으로 생활을 하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지경에 이른다. 짜증은 금물이라 소가지 내지 말며,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은 모르면, 그 속끓임의 피해는 본인에게 돌아온다.
항상 자신을 책망하고, 상대를 원망 말라.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이 말이 ‘안빈낙도’의 중심사상을 싸잡은 함의(含意)라 마음이 후련하다.
이것 말고도 매일 같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가 바닥에서 무너지고, 사회 해악의 비리 행위가 날이 갈수록 심각하니 대책이 시급하다. ‘안빈낙도’의 소양이 조금만 있었어도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난을 이긴다는 것은 이열치열로 극도로 궁핍한 끝에 살길이 생긴다는 것으로 천리(天理)로 자조(自助)의 수순이다.<끝>
이준걸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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