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삼국유사에는 숱한 인명과 지명, 사찰 이름들이 나온다. 삼국유사는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쓴 사서다. 신라의 사찰 미탄사(味呑寺)도 삼국유사에 지나치듯 한번 언뜻 언급됐다. 흔적도 없는 절, 일연 선사가 쓴 책에 이름만 있는 줄 알았던 그 절의 실체가 발견된 건 지난 2013년이다. 하지만 그 발견도 다른 계기로 찾은 게 아니다. 바로 삼국유사의 기록 한마디가 근거가 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치원은 본피부(本彼部)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의 남녘에 옛 집터 하나가 있는데 이르기를 이것이 최치원의 고택이라 하니, 그러함이 분명하다(致遠乃本彼部人也 今皇龍寺南味呑寺南 有古墟云 是崔侯古宅也 殆明矣)’는 기사가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박혁거세왕 조에 실려 있는 기록이다. 기사 내용을 부연하면 황룡사를 기준으로 그 남쪽에 미탄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남쪽에 최치원의 옛집이 있었다는 말이다.
미탄사지 내에 훼손된 돌탑 하나가 있었다. 언재부턴가 기단부와 탑신 일부가 없어져버린 탑이었다. 지난 1980년 이 석탑은 남은 부재들을 기초로 당국의 손길을 받아 복원되었다. 높이 6.12m의 이 탑은 ‘미탄사지 삼층석탑’으로 명명됐다. 없어진 재료를 새로 맞추어 붙였기에 이질감이 다소 없지 않다. 하지만 신라 석탑 기초부의 형식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지난 11일 이 석탑이 보물(1928호)로 지정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이처럼 경주 일대엔 원형이 훼손된 문화재라도 국보나 보물이 될 만한 미발굴 유물이 아직도 많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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